▲ CBS 민경중 보도국장. ⓒCBS
방송사 보도국장으로서의 '권위'나 '근엄함'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흥분된다"며 터놓고 말했다. "부끄럽다"면서도 CBS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냈고 보도국장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난 18일 CBS 새 보도국장에 임명된 민경중(46) 기자 얘기다. 민 국장은 지난해 말 한국기자협회장 출마를 위한 CBS 내부 경선에서 권영철 사회부장에게 한 차례 '미끄러진' 경험이 있다.

언제, 어떻게 아픈(?) 질문을 던져야 하나 고민하는 기자를 앞에 두고 민 국장은 먼저 말을 꺼냈다.

"내 부덕의 소치입니다. 오히려 그 일이 계기가 돼서 'TV제작이나 열심히 하자' 생각했죠. 이번 보도국장 선거 때도 사퇴하려고 했습니다. '기자협회 경선도 통과 못하는데 무슨 보도국장이냐' 싶어서요."

물론 TV제작본부에서 할 일이 더 남아있다는 점, 투표 제도 자체의 한계가 명백하다는 점, 자신만큼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동기 후보가 있다는 점 등도 함께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지난 15일 치러진 CBS 노조 조합원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만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보도국장 자리에 올랐다.

"노컷뉴스도 이제 식상…색다른 뭔가가 필요하다"

민경중 국장은 '노조'와 '노컷뉴스', 두 개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노컷뉴스. '일문일답'과 '정보보고'는 언론사 내부용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독자들에게 전문을 공개한 '노컷정보' '노컷뉴스'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2003년 11월, CBS에 한 번의 이노베이션(혁신)이 있었다면 이제 리이노베이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조선일보 같은 거대자본은 서명덕, 이학준 기자 등 인터넷의 강호들을 블랙홀처럼 끌어갔고 새로운 방송서비스를 통해 노출빈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노컷뉴스도 끊임없이 트랜스폼을 해야 합니다."

민 국장은 CBS 보도국 데스크는 단순히 라디오 뉴스 데스크가 아니며 라디오를 포함해 인터넷 노컷뉴스, 무료신문 데일리노컷뉴스, TV 8시뉴스, DMB까지 5개 매체를 통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현재 데스크 회의는 라디오 뉴스 꼭지를 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데스크가 기자들로부터 아이템을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각 매체에 맞는 아이템을 어떻게 지원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2월20일 오후 3시 50분 현재 인터넷 노컷뉴스(http://www.cbs.co.kr/nocut/).
그러면서도 그는 "기자들은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빨리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컷뉴스를 처음 선보였을 때야 속보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단지 빠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자들이 이제 뭔가 색다른, 뭔가 특별한 콘텐츠를 찾기 때문"이다.

그는 보도국장 후보에 나서면서부터 공약으로 노컷뉴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프리미엄 뉴스를 들고 나왔다. 그 중 하나가 와이브로(무선 휴대 인터넷)를 통한 실시간 생중계 서비스. 최근 서울 목동 일대에서 성공적으로 시연을 해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난 21년 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내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해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흥분됩니다. 물론 실패도 있겠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시도하지 않는 것, 꿈꾸지 않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선배들에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노컷뉴스와 함께 노조를 빼놓고 민경중 국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지난 99~2002년 CBS 노조위원장으로 일했고 2000년에는 265일간의 장기 파업을 이끌었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보도국장. 경력과 현직의 철학이 서로 충돌할 일은 없을까. 그는 후배들을 향해 "선배들에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일선 기자들의 자기 검열이 제일 무섭습니다. 차라리 기자가 기사를 쓰고 데스크가 막는 건 자연스러워요. 경영 상황을 고려하는 데스크의 고뇌는 오히려 정상적이지만 기자 스스로 게이트키핑을 해버리면 선배들은 그 상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넘어가게 되니까요."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선후배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래서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공정방송을 위한 열린 소통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외부에서 기사 외압이 있을 때는 스스로 보고하도록 하고 주니어 편집회의도 신설하는 등 절차를 명문화하는 것이다.

민 국장은 "임기 중에 내 자리를 던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2000년 파업 때 외곽 단체에서 보내준 지지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나 스스로를 포함해서 CBS가 건강성을 잃지 않도록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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