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세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먼저 했었던 첫 행보는 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이었다. 이때 대통령은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향했고, 그들의 고용형태를 정규직 형태로 바꾸는 방향을 취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러한 대통령의 의지에 환호했고, 행보에 열광했다. 왜? 국민들은 이미 마치 쑥 뿌리처럼 일파만파 번져가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자신들에게 적용되고 있고, 그것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2020년 1월의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보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바로 통신업계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비정규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규직화되는 것을 아예 위법이 되도록 막아버리도록 결정한 것이다.

▲방송통신 공공성강화 공동행동이 주최한 통신기업의 케이블 방송 인수합병에 따른 공익성 강화 방안 모색 토론회 포스터

이번에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유료방송시장과 인터넷 업계가 크게 출렁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서는 관계부처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인수합병을 위한다며 이른바 인수합병 심사기준이라는 것들을 내어놓았다. 문제는 이 심사기준에 있다.

바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공식 인정하고, 이것을 바로잡자고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위법화 시켜놓았다는 점이다. 바로 협력업체들의 재계약 승인에 관한 내용인데, 협력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반드시 2~3년간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 내용인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심각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불가’ 취지의 행동을 하는 모순이다.

유료방송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그냥 비정규직이 아닌, 훨씬 더 극악한 형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마치 홍길동에서 나오는 ‘호부호형’을 못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티브로드 기사라고 고객 방문 시 이야기하지만, 정작 티브로드에서는 우리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원청에서 하청 업체를 변경한다는 소문만 돌아도 고용을 걱정해야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때문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원청의 직접 고용이었다. 물론 원청의 입장에서는 해줄 이유가 없다. 이대로 두면 저렴한 인건비만 들여도 수입은 지금과 같은 수위를 유지할 것이고, 산업재해가 나더라도 본인들의 직원이 아니라며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처해있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직접 고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치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최소한 대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자회사 시스템에라도 편입될 수 있도록 조치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은 오히려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앞으로 최소 2~3년 이상 유지하지 않으면 위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으로 못 박았다.

일자리 상황판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문재인 정부에게 묻고 싶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공약을 아직 지키고 싶은 의사가 남아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이번 심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들이 정규직화라는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대신에 누군가를 범법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뜻이라는 것인가?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이번 인수합병 조건은 이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때려 막은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못질까지 해서 어떤 방법으로도 열 수 없도록 만든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퍼부어준 절망을 간신히 희망으로 바꾸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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