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보수신문의 ‘색깔과 노선’은 정해진 것 같다. 조선은 ‘이명박 비판’ 중앙은 ‘양비론’ 동아는 ‘이명박 올인’.

혹자들은 이명박에 대한 조중동의 입장이 동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해관계에 따라 이들은 극렬하게 대립하기도 하고, 연대전선을 강화하기도 한다. 살인까지 불러왔던 ‘지국장 칼부림’ 사건은 보수신문들끼리의 대립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조선 “이명박호에 브레이크가 없다”

세 신문 가운데 ‘이명박 비판’ 노선을 뚜렷이 하고 있는 쪽은 조선일보다. 중앙일보가 정부조직법 협상 결렬과 관련해 양쪽을 적당히 비판하고 있는 것과 온도차가 느껴진다. 동아일보의 경우 이명박 정부에 사실상 ‘올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정치권에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손학규 ‘책임론부터’ 거론하는 게 단적인 예다. 이명박 비판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조선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조선일보 2월20일자 3면.
대체 조선의 이명박 비판이 어느 정도인데 이런 호들갑이냐는 반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일단 오늘자(20일) 3면 <초강수 둔 MB, 고이즈미 따라하기인가>의 일부분을 인용한다.

“이 당선자 주변에서도 과연 이 당선자의 이번 강수가 총선에 먹혀 들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민영화 법안은 누가 봐도 기존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었지만, 이 당선자의 정부조직법은 협상 타결이 가시권 안에 들어온 상황에서 대결 국면을 스스로 선택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당선자의 이번 승부수는 일부러 싸움을 걸어 가는 노무현 모델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조선은 30면 <양상훈 칼럼-브레이크 없는 이명박호>에서는 아예 직격탄을 날렸다. 이 칼럼은 글자 한 자 고치지 않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에 실려도 ‘어색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양상훈 논설위원은 숭례문 국민성금운동 제안과 초대내각 인선, 지역편중 인사와 출신교 행사 참석 등을 일일이 열거, 비판한 뒤 다음과 같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조선, “새 정부 장관들 중에 이명박에 과연 NO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당선자 앞에서 ‘NO’가 사라진 것은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다. 지지율이 50%를 넘으면서 주위에서 반대 의견이 급속히 사라졌다고 한다. … 대선까지 사상 최대 표차로 승리한 이후 당선자 주변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은 당선자가 청와대 비서실, 장관, 차관, 국회의원 공천, 공기업 사장·감사 등 수많은 자리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마당이다. 웬만한 사람 아니면 ‘NO’ 하면서 나서기 어렵다. 경선 때 그나마 반대 의견을 내던 원로그룹도 이제 현장에선 한 발 물러서 있다 … 엊그제 당선자를 중심으로 도열한 새 정부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서 과연 이 중에 누가 대통령에게 ‘NO’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으면 벽에 충돌한 다음에야 멈춘다. 속도가 빠를수록 피해는 더 크다.”

▲ 조선일보 2월20일자 34면.
조선은 지금 이명박 당선인의 ‘모습’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잔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5년을 힘들게(?) 버티며 ‘정권교체’ 해놨더니 이런! 노 대통령과 마인드가 비슷해? 뭐 이런 격이다. 지면에서 그런 흔적이 조심스레 묻어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안감’ 내비친 조선일보

하지만 조선의 ‘이명박 비판’의 이유는 이런 이유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는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지만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인수위의 잦은 혼선과 잡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지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식 강공 드라이브’에 신물(?)이 나 있는 유권자들이 아직 많은 상황에서 이 당선인의 첫 ‘정치력’이 발휘된 것이 강공책이었다. 명심하자. 여론은 빠르게 변하는 게 특징이고,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변적일 때가 많다.

현재 조중동은 물론이고 거의 대다수 신문과 방송 등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될 미디어시장 재편(이를테면 신문방송 겸영허용과 같은)을 염두에 두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입장’을 내부적으로 조율하거나 조정하는 단계에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떡고물’ 생각해서 할 말 조금씩 참으면서 ‘적당히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 중앙일보 2월20일자 사설.
중앙의 ‘적당한 양비론’과 동아의 ‘이명박 올인’ 현상 등을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해석할 경우 반쪽자리가 되기 쉽다.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듯이 보수신문 역시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정치적 대의명분 등은 솔직히(?) 그 다음이다.

조선 역시 이런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방식이 좀 다르다. 조선은 이명박 정부의 미흡한 정치력이 불러올 과오가 두려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불안한 정치력을 그냥 두고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총선에서 안정론이 우세하지만 견제론 역시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것 역시 한 요인이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할 경우 ‘이해관계’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불안한’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조선일보가 브레이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셈인데,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이 당선인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와 이명박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는 지도 향후 정국을 보는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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