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자유한국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두고 정치공세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중국인 입국 금지 등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온 한국당은 우한 체류 교민 700명의 격리시설 지역이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되자 '야당 지역을 골라 바꾼 것이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조선일보를 통해 적극 보도되고 있다. 아산·진천 지역 님비현상에 공당과 언론의 정치적 해석이 기름을 붓고 있다.

조선일보는 30일 기사 <천안은 지역구 3곳 모두 여당… 한국당 "야당지역 골라 바꾼 것 아니냐">에서 "정부가 당초 격리 장소를 천안으로 잠정 결정했다가 주민들 반발에 아산·진천으로 갑자기 변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야권에선 '정부가 여당 지역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야당 지역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충북 진천 주민들이 29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을 트랙터 등 장비로 봉쇄한 뒤 우한 교민 격리 수용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진천군, 연합뉴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정부가 먼저 검토했던 천안 지역은 전임 구본영(민주당) 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낙마한 상태라 총선과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며 "천안은 이규희(천안갑)·박완주(천안을)·윤일규(천안병) 등 지역구 의원 3명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고 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국내 송환되는 중국 우한 지역 교민과 유학생은 김포공항으로 입국해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나눠 격리된다"며 "각각 자유한국당 이명수(아산갑)·경대수(증평·진천·음성) 의원 지역구"라고 보도했다.

이명수 한국당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지역을 바꾼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못 하고 있는데 정치적 결정을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대수 한국당 29일 기자회견에서 "인재개발원은 외부와 격리 차단이 불가능한 장소로 우한 폐렴 전파 위험성이 높다"며 "정부가 공동 주거형 아파트와 공공 기관이 밀접한 혁신도시에 우한 교민을 수용하겠다는 방침은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월 30일 <천안은 지역구 3곳 모두 여당… 한국당 "야당지역 골라 바꾼 것 아니냐">, 사설 <'격리 시설' 與 지역서 野 지역으로 변경, 왜 일을 키우나>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 <'격리 시설' 與 지역서 野 지역으로 변경, 왜 일을 키우나>에서 아산·진천 격리시설에 대해 "두 시설은 모두 시내에서 먼 곳에 있는 독립적 시설이다. 우한폐렴은 침방울 등을 통해 옮겨지는 전염병"이라며 "수백m 떨어진 공기 전염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주민들이 어려운 처지의 우리 교민을 생각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주기를 바란다"고 당일 보도내용과는 다소 다른 맥락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어 조선일보는 "이 소란은 정부가 증폭시켰다"며 "천안의 국회의원 세 명은 모두 여당 소속이다. 아산과 진천 시설은 야당 의원 지역구다. 아산과 진천 주민들 입장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교민 격리시설 지역 변경에 대해 당초 천안이 확정된 것이 아니었고, 교민규모에 따른 수용시설을 고려해 지역을 확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통화에서 격리시설 변경 논란과 관련해 "큰 오해다. 우리 교민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여러 옵션을 두고 과정들을 찾고 있었다"며 "24일 우한 총영사관에서 이송하겠다고 공지했을 때 신청자가 150명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시설의 수용 능력이다. 1인 1실을 원칙으로 하고, 공항에서의 이동거리, 응급사태 발생 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의료시설의 위치 등을 고려해 지역적으로 안배했다"며 "어느 한 지역에 너무 집중되서는 안돼서 마지막까지도 확정되기까지 많은 토론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천안도 확정은 아니었나'라는 질문에 박 장관은 "확정이 아니었다. 보도가 나갔을 때 모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확정된 내용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우한 교민 격리시설로 천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은 중앙일보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한국당은 중국인 입국 금지, 중국 관광객 송환 조치 등의 주장을 지속하고, '우한 폐렴' 표현을 고수하는 등 중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형태의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는 까닭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9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청와대가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이나 고치고 있는데, 거기에 신경쓸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라며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자가 삽시간에 50만명이나 돌파한 사실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한 폐렴 확산 차단보다 반중 정서 차단에 더 급급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중국 전역을 오염지역으로 보고, 중국과 가장 가깝고 가장 왕래가 많은 우리나라는 조금만 실수를 하게 되면 곧 위험지역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한국당 의원은 "중국인 등 외국인에 대한 입국정지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검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조경태 한국당 의원은 "즉각 중국인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라. 우리나라에 온 중국 관광객을 즉각적으로 송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국제보건기구(WHO)는 지난 13일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폐렴 파이러스를 '20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했다. WHO는 지리적 위치 등이 포함된 특정 질병의 명칭이 차별과 혐오, 과도한 두려움 등을 조장한다고 판단해 2015년 과학자, 국가, 미디어 등에 이 같은 사회 악영향을 유발하는 질병의 명칭을 배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WHO의 국제보건규칙은 질병 확산을 통제하더라도 국가 간 이동을 불필요하게 방해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한겨레 1월 30일 사설 <감염병까지 ‘정치공세’ 활용하다니, 무책임하다>

한겨레는 30일 사설 <감염병까지 '정치공세' 활용하다니, 무책임하다>에서 "불안에 휩싸인 일부 국민이 극단적 주장을 펼치면 오히려 이를 차단하고 설득해야 할 공당이 무책임한 선동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데 몰두하니 개탄스럽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나 중국 관광객 송환은 정당하지도 않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당장 외국인 차별 논란, 중국과의 외교 분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한국당을 규탄했다.

한겨레는 "이게 집권 경험이 있는 제1야당에서 나올 얘기인지 아연할 따름"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친중 반미 문재인 정부'탓으로 돌려 표를 얻을 계산이라면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저급한 공세로 스스로를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고, 제1야당답게 차분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불안을 잠재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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