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출범한 FC 서울 황보관호가 결국 3개월 반 만에 좌초됐습니다. 황보관 감독은 26일,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이지만 새 시즌 두 달만에 팀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지자 스스로 극약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올 시즌 개막이 두 달도 채 다 지나지 않은 가운데 최순호 강원 FC 감독에 이어 황보 감독까지 물러나면서 벌써 2명의 K리그 감독이 중도하차했습니다. 4월 대반격을 꿈꾸며 명예 회복을 노린 황보관 감독, FC 서울은 더 큰 상처만 입은 채 그야말로 구단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시즌 개막전 수원 삼성과의 더비 매치에서 완패한 것을 시작으로 좀처럼 나아지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만큼 황보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팀을 맡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지만 뚜렷한 색깔도 없고, FC 서울이 갖고 있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감독에 대한 능력, 자질 문제까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4월 대반격을 꿈꾸며 나름대로 장밋빛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단 한 순간이었고, 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가릴 것 없이 무승(無勝)이 이어지면서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습니다.

▲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26일 전격사퇴한 프로축구 FC서울 황보관 감독. 사진은 지난 10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팬들의 반응,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고, 황보 감독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응을 잇따라 쏟아냈습니다. 서포터들은 응원 보이콧을 거론하며 황보관 감독, FC 서울의 경기력을 크게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광주 FC와의 리그 7라운드 경기에서 0-1로 패하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황보 감독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3달 반 만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습니다. 지난해 챔피언 팀의 수장이 새 시즌 개막 2달 만에 물러나 최대의 시련을 맞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황보 감독의 퇴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서울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황보 감독이 펼치려 했던 축구가 제대로 꽃 피우기도 전에 물러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FC 서울이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감독이 물러난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구단 전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어떤 점이 잘못 됐고 문제가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지난해 우승했을 당시의 감독을 물러나게 했던 상황부터 선수들의 정신 자세, 구단 내부 분위기, 상황 등 여러 면에서 꼼꼼히 따질 건 따지고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나 팬들 모두 공감했던 부분이었지만 지난해 FC 서울을 10년 만에 우승시킨 넬로 빙가다 감독의 퇴진은 여러 가지로 납득하기 어려웠던 점이 많았습니다. 서울의 숙원이었던 우승을 성공시켰고, 팬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감독이 정작 구단과의 마찰, 이견 때문에 물러난 것은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빙가다 감독이 물러난 것은 그럼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구단이 되기를 지향하는 팀이 초보나 다름없는 감독, 그리고 서울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 감독을 영입한 것은 팬들을 더욱 납득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고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정작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 지난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전력에 결국 중도 하차로 이어지고 팬들도 등을 돌린 이 상황은 판단 미스 이상의 결과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황보 감독의 책임도 책임이지만 구단 차원에서도 충분히 이 부분을 팬들에게 납득시키면서 더 잘 하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선수들의 자세도 그렇습니다. 올 시즌 FC 서울이 펼친 경기 가운데 선수들 내부적으로나 팬들 모두 공감할 만한 경기를 펼친 것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부상 선수가 많았고, 황보관 감독의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우승으로 인한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 갔던 것은 오히려 서울의 발목을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장점을 조직력으로 연결시켜 전력 극대화에 힘을 제대로 쏟지 못하다보니 선수들 스스로도 자멸한 경우가 많았고, 결국 지난해만큼 시원한 경기를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황보 감독이 물러났다고 하지만 선수들 스스로 최근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스르고 의지를 다지며 다시 출발하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감독이 물러난 뒤에 분위기가 좋아진 팀은 많았습니다. 반대로 그대로 추락을 거듭한 팀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감독이 물러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분위기를 수습하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좋아질지, 나빠질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서울이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가져가려면 시즌 중반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전반적인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변한다고 끝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다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한 단계씩 나아간다면 황보관 감독이 물러나면서 바랐던 것처럼 다시 명예를 회복하는 FC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리그 우승 뿐 아니라 AFC 챔피언스리그에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어 그야말로 중요한 한 해를 보내야 하는 FC 서울이 이번을 계기로 정말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낼지, 많은 팬들은 진심 어린 변화를 기대하면서 관심 있게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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