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 '인재2호' 원종건 씨가 미투 논란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정당의 이벤트성, 깜깜이 인재영입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언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정치권력 검증의 한 축인 언론 역시 상당수가 원씨 영입 당시 그의 인생 스토리를 집중조명하는 것에 그쳐 한계를 드러냈다.

28일 원씨가 데이트폭력 의혹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이 사실상 영입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29일 주요 조간 신문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 인사영입 방식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미투 논란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입인재 자격을 자진 반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씨가 민주당 '2호 영입인재'로 선정된 주요 계기는 2005년 MBC 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에서 각막기증으로 눈을 뜬 어머니와 함께 소개되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과 기업 사회공헌 분야에서 일한 경력 등 그의 인생 스토리가 결정적이었다. 자유한국당에서도 영입을 제안했을 정도로 그의 스토리는 주요 정치권에서 관심을 받았다.

민주당으로서는 원씨 영입이 이번 총선에서 20대 남성층 표심을 공략하는 주요 카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거진 데이트폭력 의혹의 내용이 상당한 구체성을 띄고 있어 원 씨 개인은 물론, 인사검증을 소홀히 한 민주당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겨레는 관련 사설에서 "선거를 앞두고 스타성·화제성 위주로 영입을 급조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원씨 문제는 이벤트성, 깜깜이 인재 영입 방식의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 사례"라고 총평했다.

한겨레는 "선거철만 되면 모든 정당이 한 철 장사 하듯, 이미지 위주로 사람을 끌어모아 비례대표 의석을 주거나 전략지역에 출마시키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며 "유권자들도 '보여주기식 영입'에는 냉철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원 씨 논란이 정치권의 무분별한 영입 경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정치권의 인재 영입의 기준이 모호한 가운데 그저 특정 인물의 인지도를 중심으로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인재를 영입한다면 이는 국민이 원하는 공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며 "여야는 국회의원이 정치적 전문적 영역에서 경험과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켠는 인물을 수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신문은 민주당이 투기 논란이 일었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이 일었던 정봉주 전 의원에 불출마를 권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여야의 인재 영입이 예능 프로그램 같은 이미지와 감성팔이 쇼로 변질된다면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선거철만 되면 '떴다방'처럼 벌이는 이벤트성 인재 영입으로는 정치권의 체질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민주당이 발표한 영입인재 2호 원 씨는 4·15 총선을 앞두고 '이남자'(20대 남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나 원씨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지 약 한 달 만에 성폭력 가해 혐의자로 추락하면서 민주당은 '이여자'(20대 여성)들의 마음까지 놓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일보는 "원씨 영입을 전후해 민주당엔 원씨 관련 제보가 여러 건 접수됐으나, 당 지도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지난달 본보가 민주당에 관련 문의를 했을 당시, 당 관계자는 '원씨의 사생활'이라는 취지로 답했었다. 자칭 '페미니스트 정부'의 국정 파트너인 집권 여당이 '성인지 감수성'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1월 29일 사설 <‘이미지 정치’ 한계 드러낸 민주당의 ‘인재 영입’>

현재 영입 검증을 소홀히 한 민주당에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마땅하지만, 과거 원씨 영입당시 정치권력을 검증해야 할 언론이 원씨와 민주당을 제대로 비판하고 검증해내지 못한 한계도 일면 드러나게 됐다.

지난해 12월 29일 민주당이 원씨 영입을 공식발표한 이후 대다수 언론은 원씨에게 '역경극복', '효도소년', '사연', '젊은피', '청년', '이남자',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그의 인생 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 원씨 영입 전후로 관련 제보가 민주당에 여러 건 접수됐다는 점, 개인 '스토리 텔링'에 치중한 외부인사 영입이 이뤄졌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언론은 원씨에 대한 평판조회에 나서거나, 민주당 추가취재에 나서거나, 정당 영입인재 리스트 관련 정치적 의제 부재 등을 짚어낼 수 있었지만 관련 비판기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일부 칼럼 등에서 이벤트성 인재영입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 정도다.

지난 14일 김동춘 성공회대 NGO대학원장은 한겨레 칼럼<'인재영입'으로 승부하는 한국정치>에서 잇단 민주당 영입후보 발표에 "사실 여야 정당 지도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영입한다고 해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장애인을 영입한다고 해서 장애인 정책이 바뀌지 않으며, 벤처기업가를 영입한다고 해서 기존 재벌체제가 혁신되지 않으리라는 것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원장은 "결국 선거용 이벤트에 불과한 이 쇼를 30년 동안 계속하는 정당의 선거 정치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적폐이자 국민을 바보로 아는 눈가림용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의회정치는 현장대중의 고통과 눈물을 접해보지 않았거나, 국가의 재정과 예산부처의 강고한 논리의 벽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좌충우돌하는 데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지난 1일 임장혁 중앙일보 기자는 칼럼 <민주당 인재영입이 놓친 것>에서 "(민주당)영입 1·2호가 모두 ‘청년’으로 드러나자 당 청년위원회 등에서 입문을 꿈꿨던 이들은 '우리는 뭐냐'고 토로하지만 그 목소리는 억눌려 있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라며 "그러나 감동이 잦아들고 ‘무엇을 하는 사람을 찾는 거냐’는 물음으로 돌아오면 금세 깊은 공허와 마주치게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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