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4월 24일 방송한 ‘공포의 집합’편이 논란이 되고 있나보다. MBC 뉴스는 25일 “해당 대학측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시사매거진 2580’ 홈페이지에서 방송대본을 봤더니 이날(25일) 같은 방송사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오버랩됐다.

‘공포의 집합’편에서 이 대학의 선배들은 후배들이 제대로 인사 안한다고 집합을 건다. “지금 너희 선배들 얼굴도 모르잖아. 나 1학년 때 다 인사했어. 심지어 동기들한테도 인사했단 말이야. 인사가지고 이야기 나올 시점 아니잖아.” “너희들은 왜 인사 안하는데. 야, 너희들 내년이면 이제 이 자리에 서니까 인사 안 해? 이빨 보이고 웃는 자들은 낙인찍히는 거야. 박아.” 이러면서 구타를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방송대본에 25일 사건을 겹쳐봤다. 내 머리에 떠오른 가상대본이다. 어디까지나 ‘가상’이다. 구타와 욕설은 뺐다.

#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집합 거는 선배들

- 지금 너희 경영진들 얼굴도 모르잖아. 나 신참 때도 다 개편했어. 심지어 연조 쌓이고 경영진 코드 안 맞아도 고분고분 개편 다 했단 말이야. 개편가지고 이야기 나올 시점 아니잖아, 지금. 노조는 그렇다고 쳐. 야.
- 예.
- 너희들은 왜 개편 안하는데. 신경X 나가고 손석X도 하차했는데 왜 개편 안하는데. 야.
- 예.
- 야, 너희들 내년, 내후년이면 어차피 윗사람들 다 바뀔 거라고 개편 안 해?
- 아닙니다.
- 나 오늘 이걸(각목) 받긴 받았는데 왜 프로그램에 말이 많이 나오느냐고. 제작자율성이니 뭐니 버티는 자들은 낙인찍히는 거야. 박아.

다시 ‘공포의 집합’편에서. “선배들이 잘해주니까 좋지? 우리는 항상 욕먹어, 왜? 잘 안 때리고 뭐라고 안 하니까.” 이들은 때리면서 열 받는다. “나 때린다, 지금. 열 받게 하지 마. 내 성격 잘 알지? 똑바로 박아라.” 가상대본에서도 몇 자 빼고는 거의 그대로다. ‘집합’에서는 구타가 계속될 뿐.

# 군기잡기 시작하는 무리들

- 선배들이 잘해주니까 좋지?
- 아닙니다.
- 우리는 항상 욕먹어, 왜? 한다고 하는데 방송독립이네, 제작자율성이네 시비가 끊이질 않으니까. 너희들까지 똑바로 안하면 우리가 선배들한테 까이잖아. 선배라면 누군지 알지?
- 네.
- 암말 않고 고분고분 잘해보자고 했어, 안했어? 그렇게 안 가르쳤냐고?
- 네
- 안 가르쳤니? 제대로 하자, 박아. 나한테 맞을 놈 없냐? 잘해주니까 기어올라요. 대가리 박아. 나 때린다, 나 때린다. 지금. 열 받게 하지 마. 내 성격 잘 알지? 똑바로 박아라.

‘공포의 집합’편에 나온 선배들은 “성질대로 하면 학교를 못 다닐 거 같고, 참자니 너희들이 만만하게 볼 거 같고”라며 신세한탄 하더니, ‘교수님’까지 끌어들인다. “너희들 아무것도 아니야. 크게 될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인사만 봐도 알아. 교수님들한테도 인사할 때 똑바로 해. 교수님이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논리니 타당성이니 필요 없다. ‘시키면 그냥 해.’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헛갈린다.

# 정신교육 하는 선배들

- 안팎에서 공영성, 공공성 떠드는데 성질대로 하면 못 다닐 거 같고, 참자니 너희들이 만만하게 볼 거 같고. 먼저 내보낸 신 앵커, 100분 필기팀, 엊그제 PD노트팀 너희들이 도와줘야 돼. 너희들도 따라줘야지, 군기 안 잡히면 너희들이 혼나잖아. 너희들 아무것도 아니야. 크게 될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개편 때 뻣대는 것만 봐도 알아, 하는 행동만 봐도 안다고. 우리보다 높은 분들한테 인사할 때 똑바로 해. 거기서 ‘쪼인트’ 까면 더 무서워. 거기서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그것 때문에 선배들 욕먹게 하지 마.

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맡아 첫 방송을 한 때가 2003년 10월 20일이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한차례 진행자 교체방침이 논란이 됐고, 때마다 교체될 거라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자진 하차했다. MBC는 곧바로 “김미화씨가 지난 7년여 동안 성실하게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 온데 대해 감사한다”며 진행자 교체를 알렸다. 정말 그래서 감사했을까. 8년 남짓한 기간 동안 청취율, 광고 판매율, 진행자 선호도 등 각종 조사와 수치로 보더라도 프로그램을 손색없이 이끌어줘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만둬줘서?

강금실 법무부장관 시절 “코미디야, 코미디”하던 그의 말이 몇 년을 입안에 맴돌았었다. 세상을 참 제대로 담은 말로 들렸다. MB정부에서 새 말을 얻었다. 후배들을 두드려 패던 그 선배들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이 한마디로 시대를 제대로 꿰뚫었다.

“뭐 시키면 말하지 마. 그냥 해, 바로 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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