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세계 육상선수권 개막이 3달 반 가량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분위기는 크게 달아오르지 않은 듯합니다.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대거 총출동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육상 실력,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마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있던 마라톤은 뒷걸음질치고 있으며, 세계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한국 기록들 가운데서는 수십 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마라톤, 도약 종목 등 몇몇 가능성 있는 종목들에 투자해 실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지난 주말, 태국에서 모처럼 의미 있는 육상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한국 남자 계주팀이 태국국제육상대회 400m 계주에서 39초 73의 기록으로 태국, 중국 등을 제치고 사상 첫 국제 대회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비록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기준 기록인 39초 20에는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었지만 지난달 첫 계측 때와 이달 초 홍콩에서 열린 육상리그에서 기록한 39초 93보다 불과 3주 만에 0.2초를 단축시킨 좋은 기록을 내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습니다. 1988년에 세운 39초 43의 한국 기록을 깨고 세계 육상선수권 출전 기준 기록도 통과해 결선까지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향한 순조로운 신호탄과도 같은 성과였습니다.

▲ 2009년 육상 계주 대표팀. 이 가운데 임희남(사진 오른쪽)이 현재 계주대표로 여전히 활약중이다.
사실 한국 육상 남자 계주팀이 제대로 만들어져서 가동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00, 200m 등 개인 트랙 종목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고 판단한 육상계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택한 종목이 바로 400m 계주였는데, 바통 터치 기술 등 기본적인 훈련을 거쳐 지난달 말에야 처음으로 실제 기록을 계측했을 만큼 다소 촉박하게 훈련하고 준비를 해 왔습니다. 하루하루가 빠듯한 가운데서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많았고, 더욱이 이전에도 수차례 실패를 거듭했던 만큼 이를 달갑게 본 시선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0m 랭킹을 통해 선수들을 선발해 국내에서 최고 실력을 갖춘 선수들로 멤버들을 구성한 만큼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선수들은 고강도 훈련을 잘 소화하고 하루가 다르게 좋은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기본기부터 체계적으로 다시 배우고, 아시아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는 태국에 가서 기술을 전수받는 등 나름대로 한국적인 현실에 걸맞은 체계적인 연습, 훈련을 한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는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고 미국, 자메이카 등에 가서 무작정 최고만을 따라하려는 것과는 다소 배치가 되는 훈련법이었는데요. 기술적으로는 전수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신체적인 특성과 조건, 그리고 현지 환경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그나마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태국에 가서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는 훈련을 거듭해왔습니다.

이렇게 계주에서 필요한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선수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계주팀은 처음부터 많은 가능성을 보여왔습니다. 40초대 초반만 나오던 기록이 모처럼 39초대를 찍으며 새로운 희망을 밝힌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처음으로 실전을 뛴 지 한 달 만에 0.2초를 단축하는 진일보한 성적을 내면서 희망을 더욱 부풀려 갔습니다. 체계적인 훈련, 선수단의 의지가 잘 반영돼 이뤄낸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처음 우승하고 보다 좋은 기록을 냈다고 할지라도 아직 육상 계주팀이 넘어야 할 벽은 많습니다. 대회가 3달 반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서 이번에 기록한 39초 73보다 무려 0.53초 이상을 앞당겨야만 홈팬들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육상대표팀은 많은 훈련을 준비하고 있으며, 유럽 대회 출전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에 하나 선수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빨간불이 켜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 구성 역시 주력 선수의 부상을 대비해 보다 풍성하게 갖춰져야 하며, 전략적인 면을 구성하는 부분에서도 역시 시간이 다소 빠듯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육상 계주팀은 그들 스스로의 '무한도전'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침체기에 빠지고 해답이 없을 것만 같았던 한국 육상 트랙 부문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그들은 더 이를 악물고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육성을 통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처음으로 400m 계주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일본이 해냈기에 우리도 못할 건 없다라는 인식이 선수들을 비롯한 육상계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반년 프로젝트', 그리고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 육상 트랙의 마지막 자존심, 남자 계주가 정말 제대로 꽃피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앞으로 이들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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