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난 포스>, <라스트 제다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 스타워즈는 시리즈의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개봉을 맞아 화끈한 SF액션 영화에서 인생의 교훈을 전달하는 드라마로 장르를 바꿨다. 애석하게 장르의 변화는 스크린 밖에서만 벌어지지만 어쨌든 그렇다. 드라마는 도로교통법과 유전학, 콘텐츠 창작법까지 다방면의 아이템을 다룬다. 관객들은 주인공 3인방(레이, 핀, 포)과 카일로 렌의 이야기보다 명확하게 이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강연자는 셋이다. 8편 <라스트 제다이>의 감독 라이언 존슨. 7편 <깨어난 포스>와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만든 J.J. 에이브람스. 그리고 루카스필름의 수장이자 스타워즈 CEO인 캐슬린 케네디. 약 9억 달러(약 1조 원)의 제작비를 들여 그들이 합작해낸 시퀄의 교훈을 한 가지씩 살펴보자.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틸컷

‘선택 받은 자’ 라이언 존슨의 도로교통법

라이언 존슨은 어떤 의미로는 포스의 균형을 찾아온 ‘선택 받은 자(Choosen One)’이다. <깨어난 포스>로 먼지를 털고 다시 대중문화 전면에 등장한 스타워즈 팬덤을 반으로 갈라 맞춘 기계적 균형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시도는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었다.

<라스트 제다이>의 두드러진 메시지는 ‘포스는 평등하다’였다. 전작에서 출생의 비밀을 잔뜩 품고 있던 레이는 술 먹고 딸을 팔아버린 파렴치한 부모의 태생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오히려 선택받은 사람들은 실수를 한다.

루크는 단지 포스의 어두운 면을 보았다며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조카를 죽이려다가 은둔하고 적통자인 카일로 렌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제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건 선택받은 제다이 기사단이 아니라 선택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스카이워커 가문의 막장극’으로 요약되기도 하는 혈통중심주의라는 비판을 극복하고자 하는 명백한 도전이었다.

문제는 기존의 설정을 뒤엎으면서 무리한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마감도 뛰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이는 우주 최고의 제다이인 루크를 꺾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실력을 어떻게 키웠는지 설명하는 장면은 없다. 루크와 합숙훈련마저도 이틀 만에 끝난다. 태생만 흙수저고 재능은 다이아몬드수저다. 노력없이 이룬 성취에 공감할 관객이 얼마나 될까.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하다보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우주라고 다를 바 없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정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라스트 제다이>는 친절하게도 우주 교통사고 장면까지 연출한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틸컷

‘보이지 않는 위험’ J.J.에이브람스의 유전학

프리퀄의 악명을 벗겨줄 예언된 자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위험(The Phantom Menace)’이었다. 시퀄의 파국은 이미 <깨어난 포스>에서 움트고 있었다.

게임용어 중에 ‘팔레트 스왑(Palette Swap)’이라는 게 있다. 고전게임에서 부족한 메모리를 아끼기 위해 캐릭터나 배경의 색만 바꿔 표현하는 방법이다. <슈퍼마리오>에서 2P 플레이어인 루이지가 빨간 마리오에서 초록 마리오로 색만 바꿔 루이지로 만든 일. <갤러그>에서 색만 바뀌어 끝없이 등장하는 적이 대표적인 팔레트 스왑이다. <깨어난 포스>는 4편 <새로운 희망>의 팔레트 스왑이다.

모래행성에서 자라는 고아 레이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분신. 저항군에게 꼭 필요한 지도를 보관하는 BB-8은 굴러가는 R2D2. 스승을 배신하고 어린 제다이들을 몰살한 카일로 렌은 다스베이더의 판박이. 스톰트루퍼에서 전향하는 핀과 농담따먹기를 좋아하는 저항군 최고의 파일러 포를 퓨전하면 한 솔로가 된다. 심지어 제국군마저 퍼스트오더라는 이름으로 데스스타보다 수십배 큰 스타킬러를 만들어내며 돌아왔다. 결국 레이의 성별 말고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셈이다.

팔레트 스왑은 기술의 한계로 상상력을 포기하며 찾은 차선책이다. 차선책에서 최선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익숙한 캐릭터들과 눈에 익은 기체들의 등장으로 팬보이들의 일시적인 열광은 이끌었을지 몰라도 시대적 변화를 함께할 메시지가 동반되지 않으면 세대를 초월한 울림은 따라오지 않는다. 울림의 강도는 어떻게 확인하느냐. 디즈니샵 구석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는 레이, 핀, 포 카일로 렌의 굿즈를 보면 된다.

<깨어난 포스>에 이어 한 차례의 제작기회를 더 얻은 에이브람스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기어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분까지 동원해 혈통찾기에 몰두했다. 이쯤되면 ‘프랜차이즈의 제세동기’에서 ‘프랜차이즈의 유전자감별사‘로 별명을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다스베이더는 카일로 렌을 낳고 에이브람스는 에이브람스를 낳는다. 시퀄의 또 다른 성취는 격세유전이 스타워즈 시퀄 세계관의 DNA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틸컷

‘무한한 힘(Unlimited POWER)’ 캐슬린 캐네디의 오리지널 콘텐츠 작법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모든 흑막은 시스 로드. 다스 시디어스. 펠퍼틴이다.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제다이 아나킨을 다스 베이더로 흑화시킨 인물이고,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파괴하고 은하계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전체주의의 제국을 건설한 것도 펠퍼틴이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지만 시퀄에서도 그렇다.

앞서 ‘선택 받은 자(Chosen One)’ 라이언 존슨과 ‘보이지 않는 위험(The Phantom Menace) J.J. 에이브람스를 다스베이더처럼 수족으로 삼은 스타워즈 제국의 절대자 캐슬린 케네디에게 이 영광스러운 호칭을 선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하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승부했지만 결국은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공통점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루크를 중심으로 한 저항군의 맹렬한 저항이 아니라 오판의 오판을 거듭한 제국의 자멸이라는 점에서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야기를 종결지은 2010년대의 스타워즈 시퀄 3부작이 창조해낸 유일한 오리지널 스토리라면 오리지널 스토리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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