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프로듀스 사태는 작년 7월에 시작돼 해가 넘어간 지금까지 종식되지 않았다. 반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기사가 범람했다. 그 많은 기사 중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서 전달한 기사는 얼마나 될까. 스포츠동아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프듀’ 조작 후폭풍…엑스원 팬들 “가입비 3만4000원 돌려줘” (11월 19일), 팬도, 멤버도 “해체하자”…‘엑스원’ ‘아이즈원’ 곧 결판 (12월 3일), 논란의 불씨만 키운 CJ ENM 늑장 사과 (1월 1일)

스포츠동아 2019년 11월 19일 자 기사

해당 기사들은 엑스원과 아이즈원 팬들이 해체를 요구한다거나, ‘가입비환불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 엑스원 팬클럽 가입비 환불을 요구했다고 전한다. 이런 사실관계는 근거가 불분명해 보인다. 엑스원과 아이즈원 팬들은 안준영 PD가 피의자로 소환된 이후 트위터에서 그룹의 활동 유지를 바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계속해왔다. 아이즈원 팬덤은 해산이나 재구성을 바라는 목소리가 나타난 채널 자체가 없었다고 보이며 팬 연합의 공식 성명으로 12인 활동 지지를 바라는 성명문을 발표했었다. 엑스원 팬덤의 경우에도 활동 지지가 다수 여론이다. 이런 경향은 11월 27일 발행된 넥스트 데일리 기사 ‘가짜인 투표 조작으로 진짜가 되어버린 팬심’에 잘 정리돼있다.

“27일 정오를 기준으로 ‘X1 재정비 요구 팬 모임’이라는 트윗 계정의 팔로워 숫자는 189. ‘엑스원 활동 지지’라는 트윗 계정의 팔로워 숫자는 6825”였으며 “X1(엑스원) 공식 팬카페에서도 열한 명의 활동을 바라는 ‘이미지 총공(팬덤의 단체 행동)’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역시 ‘엑스원 해체 지지 팬 일동’이란 계정으로 성명서를 낸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는 250명이고, ‘엑스원 활동 지지’ 계정은 만 오천 명이다. ‘가입비환불대책위원회’라는 키워드로 트위터에서 검색을 해 봐도 두 개의 트윗이 나올 뿐인데, 저 대책위가 “팬들이 아닌 안티 집단에서 시작된 것”이란 지적이 보인다.

무수한 숫자의 인원으로 구성된 것이 팬덤이니 만큼 팬들의 여론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정리하였듯 팬덤 내 다수 여론이 무엇인지는 알기 쉽다. 엑스원 팬덤 다수는 그룹 해산에 반대했었고, 일부 소속사가 그룹 존속에 반대해 해산이 결정된 현재 새 그룹 결성을 통한 활동 재개를 지지하며 엑스원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활동 지지 성명문을 발표했고, 활동을 지지하는 해시태그를 전 세계 트렌드와 한국 트렌드 상위권에 수차례 올려놓았다. 그룹 존속에 관해 멤버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분노하는 #엑스원_의견묵살_해명해 해시태그 역시 줄을 이었다.

하지만 해산 이후에도 언론의 보도는 여전히 자의적인 면이 있다. JTBC는 1월 9일 ‘'조작' 파문에 그룹 해체…팬클럽 회원들 "환불 소송"’이란 뉴스로 그룹 해산 이후 팬들의 동향을 보도했다.

“아이돌 팬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찾겠다"고 나섰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조작했단 논란 속에 사흘 전에 해체한 아이돌 그룹 엑스원의 공식 팬클럽 회원들입니다. 팬클럽에 가입할 때 냈던 돈을 프로그램 제작사나 기획사가 환불해주지 않으면 소송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조작' 파문에 그룹 해체…팬클럽 회원들 "환불 소송"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이 뉴스 어디에도 팬들이 그룹 해산을 반대했으며 활동 유지를 지지한다는 내용은 없다. 팬덤은 “엑스원의 공식 팬클럽 회원들”이라는 이름으로 거명됐고 팬클럽 가입비 환불이 그들의 주된 요구사항인 것처럼 소개되었다. 가입비 환불을 요구하는 팬들이 있다고 해도, 팬덤 다수 여론의 관점에서, 이 부분은 그룹 활동이 무산된 상황에 부속되는 쟁점이지 “소비자 권리”를 행사해 환불을 받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아이즈원의 경우도 비슷한 예가 많다. 중앙일보는 1월 2일 ‘'프듀 사태' 日 걸그룹 AKB48 불똥···TV예능 통편집, DJ 하차’라는 기사를 발행하며 “디시인사이드 AKB48 갤러리에서는 “이럴 거면 차라리 아이즈원을 해체해서 AKB48 활동이라도 정상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라고 전했다. 이 지면에서 설명한 적 있지만, AKB48 갤러리는 프로듀스 사태 이후 한동안 아이즈원 안티 팬덤이 점거해 허위 사실과 인격 모욕을 쏟아낸 게시판이다. 평시에도 ABK48 멤버들을 향한 성희롱 게시물이 만연한 곳이며 국내 AKB 팬클럽으로서의 위상이 없다. 기사를 평가하는 대신 기사를 접하고 느낀 소감을 말하자면, 유력한 중앙 일간지 기사에 저런 출처가 인용되었다는 사실에 정말로 놀랐다.

몇몇 기사를 골라서 살펴봤지만, 이건 결코 몇몇에 한한 현상이 아니다. 프로듀스 사태를 향해 너무나 많은 언론이 너무나 많은 뉴스를 쏟아냈지만, 사태의 한 당사자인 팬덤과 그룹 멤버들의 의견을 신중하게 파악하려 주저한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한국 저널리즘이 처한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되는 현상이겠지만, 프로듀스 사태가 연예면과 사회면에 걸친 사안이라 가십성 기사가 쉽게 써졌으며, 여러 차원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엮인 사안이란 점도 작용했을 것 같다. 프로듀스 사태에 관해 비판하는 건 언론의 자유이자 권한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분명한 사실로 비판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프로듀스 사태의 또 다른 피해자는 엑스원과 아이즈원 팬들이다. 엑스원 팬들은 그룹이 데뷔를 한 것도 아니고 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한 치 앞을 더듬을 수 없는 채 활동 재개를 바라는 희망고문을 반년 동안 겪었다.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기사였다. 말이 연예인과 팬이지, 아이돌과 팬덤의 애착관계는 일상에서 대면하는 어지간한 지인들의 그것 이상이다. 그게 합리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 정도로 정서적으로 유착된 대상이 소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 같이 일희일비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럼에도 결국 그룹은 해산돼 버렸다. 이건 가볍게 다루어도 되는 성질의 감정이 아니다.

유수의 언론이 팬들의 이름을 빌려 기사를 썼지만 팬들의 말은 대변되지 않았다. 이 한 줄의 상황에, 언론이 아이돌 팬들을 다루는 태도, 프로듀스 사태를 보도해 온 태도가 요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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