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혜인 기자] KBS <뉴스9>의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단독 인터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자주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와 배치되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는 인터뷰 내용을 반박 질문 없이 단순 인용 보도한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7일 KBS <뉴스9>는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단독 인터뷰해 보도했다. 주변국의 대사를 통해 외교전략을 듣고자 하는 취지로 한미 두 나라의 현안에 대한 해리스 대사의 입장이 담겼다.

3분가량의 보도에는 기자의 질문 없이 해리스 대사의 입장이 사실상 나열됐다. 남북협력을 앞세우겠다는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한 해리스 대사의 입장은 3차례 강조됐다. “해리스 대사는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 진전 속도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앵커 멘트에 이어 기자는 같은 문장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전한 “미국과 협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답방, 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는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7일 KBS<뉴스9>는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인터뷰해 보도했다.

이는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진전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해 공동어로 등 접경지 협력과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사업,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김정은 위원장 답방 등을 언급했다.

북미대화에만 기대지 않고 자주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표명한 문 대통령의 신년사 보도 뒤에 “미국과의 협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해리스 대사의 인터뷰 보도가 배치된 것이다. 이에 따른 반박이나 후속보도가 이어지지 않아 마치 미국 대사가 한국 정부의 계획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해리스 대사는 이날 한국정부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했다. 해리스 대사는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고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고 기자는 “한국이 제공하는 지원은 어떤 수준이든 환영한다고 했다”는 대사의 요청을 한 번 더 언급했다.

한국군의 파병 요구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진척 등 국내에서 민감하게 다뤄지는 주제를 기자는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인용하고 설명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미국의 파병요청은 미 대사의 발언을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해 시작됐다고 보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도 존재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군 파병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부당하게 한국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당위성을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지난 8일 열린 KBS 임시이사회에서 해리스 대사 인터뷰에 대한 지적이 터져 나왔다. 조용환 이사는 이사회 이후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대사 인터뷰 보도는 이미 잘 알려지고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미국 정부와 미국대사의 입장을 그대로 옮기고 반복·강조해 확성기처럼 전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조 이사는 “문제는 미국대사의 주장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미국의 이해관계에 일방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것이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에 어긋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이사는 “아무런 이의제기나 비판 없이, 그날 나온 대통령의 정책발표를 반박하는 듯한 형태로 강조, 보도한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강형철 이사는 “인터뷰를 하면 상대방의 잘못된 주장에 질문해야 하는데 일방적인 스피커 역할을 했다는 게 보도의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대통령의 신년사 핵심은 독자적인 행동으로 남북관계를 헤쳐나가겠다는 것인데 그 뒤에 미국 대사의 일방적인 입장이 나와 모양새가 이상해져 버렸다”고 강조했다.

강 이사는 9일 자신의 SNS에 영국 BBC라디오의 존 볼턴 인터뷰 사례를 들어 공영방송 인터뷰어의 질문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2007년 BBC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강조하는 존 볼턴에게 “그러한 접근이 근본적으로 실책 아니었나?”, “증거가 있냐”,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식의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강 이사는 “공영방송 인터뷰어는 정치공학적 질문이 아니라 국제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물어야 공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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