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MBC본사 1층. 손팻말을 든 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대오를 갖춘 이들은 손팻말을 들고 서 있을 뿐, 그 어떤 구호도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는 MBC 구성원들이 되레 더 멋쩍은 표정으로 어색해하며 지나갈 뿐이다.

‘밀실개편 해사행위 경영진은 방조말라’ ‘라디오 시사프로 손보기 PD힘으로 막아내자’ ‘제작자율성 방송공정성 PD힘으로 지켜내자’ ‘무너지는 MBC라디오 경영진은 방조말라’… 손팻말 문구에서 느껴지듯, 지금 MBC 내부 분위기는 사뭇 비장하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씨 교체 움직임 뿐 아니라, 최근 MBC안에서 제작자율성 침해 문제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라디오본부를 넘어 노동조합 차원에서 전면 대응에 나섰다.

▲ 4월19일 오전 11시30분, 라디오PD를 비롯한 MBC노조 노조원들이 MBC본사 1층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이 뿐 아니다. MBC본사 1층에는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이 해고된 지 오늘로 317일째가 되었다는 표시와 MBC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로 MBC가 무단협 상태가 되는 7월14일이 오늘로 87일 남았다는 표시가 곳곳에 있어 비장함은 더하다.

지금, MBC는 어떤 모습일까? 더 구체적으로 지난해 김재철 사장이 MBC에 들어온 뒤, MBC와 MBC구성원들은 어떠한 상황을 겪고 있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18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39일간의 김재철 퇴진 총파업 이후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올해 6월7일이면 해고를 당한지 딱 1년이 된다. 이와 함께, MBC노조 집행부와 지역MBC노조 집행부 또한 해고와 관련해 정직, 감봉 등 잇따라 징계를 받았다.

또, 지난해 김재철 사장 반대 성명에 참여한 선배들은 승진이 누락되고, 보직에 불이익을 당했다. MBC 공정방송의 큰 디딤돌이었던 단체협약은 김재철 사장의 일방 통보로 결국 해지됐다. 오는 7월14일이 되면 노조는 무단협 상태가 되고, MBC는 실질적으로 ‘무노조 회사’가 되는 셈이다.

이 뿐 아니다. <PD수첩> 최승호 PD를 포함한 <PD수첩> 제작진은 강제로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고, 인사 고과 강제 할당으로 최저 등급(R등급)을 받은 구성원들은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인사위원회와 재심을 거쳐 고충처리위원회까지 갔지만 단 한 명도 구제받지 못했다.

지역MBC의 상황도 딱히 다르지 않다. 지난해 진주-창원MBC가 강제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된 데 이어, 올 해 강릉-삼척MBC, 청주-충주MBC가 ‘광역화’라는 이름 아래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지금, 라디오본부PD들은 김미화 교체를 비롯한 일방적인 라디오 개편에 반대하며 매일 아침과 낮, 두 차례에 걸쳐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 4월19일 오전 11시30분, 라디오PD를 비롯한 MBC노조 노조원들이 MBC본사 1층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이런 상황에서 MBC가 축제 한마당인 ‘무주 페스티벌’ 계획을 밝히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 침해, 제작자율성 침해, 보도 기능 약화 등 MBC가 그 어느 때보다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은 상황인데도, 김재철 사장은 더불어 즐기기 위한 대대적인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MBC노조에 따르면, MBC는 오는 5월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무주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다. 창사 50주년을 맞아 ‘화합’의 장을 펼치겠다는 이유에서다. MBC는 MBC본사와 지역MBC 구성원 3천2백명을 4회에 걸쳐 각각 8백명씩 1박2일간 무주페스티벌에 참여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윷놀이도 하고, 명랑운동회도 한다고 한다. 또,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으로 사원 장기자랑도 한다고 한다.

MBC노조는 이와 관련해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부서장들이 이미 부서별 할당을 맞추기 위해 노조원들에게 축제 참가를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축제에 참가하지 않으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우려하며, 당장 무주페스티벌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창사50주년을 맞아 ‘화합’의 장을 펼치겠다는 MBC의 발상 자체를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충분히 창사50주년을 즐길 수 있고, 그 방안 가운데 하나로 구성원들과 화합의 장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엄혹한 시기를 맞고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MBC구성원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진심으로 윷놀이, 명랑운동회, 사원 장기자랑을 즐길 수 있을까 싶다.

오는 6월7일이면 해고된 지 1년이 되는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 강제 발령을 받은 최승호 <PD수첩> PD, 강제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된 지역MBC,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 받은 MBC노조, 제작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며 매일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는 라디오PD들…

안타깝게도, 이들 모두의 기나긴 겨울은 올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MBC가 어떠한 상황인지 전혀 괘념치 않은 한 분이 있는 한, MBC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혹독하고도 매서운 겨울은 올 해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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