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학과 특성상 해마다 등단작가를 배출했다.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리는 친구도 있었고, 문예지에 이름을 올리는 후배도 있었다. 친구들은 공모전 철이 되면 피폐한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밤을 새우며 소설을 끌어안고, 시를 품고 있었던 탓이다. 밤새 한 줄을 건지지 못할 때도 있지만, 밤새 쓴 글을 아침에 모두 지워야 할 때도 있었다. 어젯밤에 빛나던 문장은 아침에 일어나 읽어보면 모두 버려야 하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밤 시와 소설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사랑했지만, 날이 밝으면 남은 것은 후회뿐이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날들이 매일 반복되었다. 마음은 헛헛하고, 강의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친구들은 더 말수가 적어졌고, 다들 날 선 칼날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그나마 수업에 나오는 친구들은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이다.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잠수 타는 친구들도 있었다. 모습을 감추고, 연락도 되지 않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잠수를 타든 그렇지 않든 조용히 공모전을 준비하고, 응모하고, 애태우며 결과를 기다렸다- 마감일에 맞춰 작품을 보내고 나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다 쏟고 난 후의 공허함 때문에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시든, 소설이든 당선자는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당선 연락을 받을 확률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해야 하는 정도로 낮았다. 그래도 문학을 바라보고 십 년이라는 습작 기간을 묵묵히 버텨온 친구들이었다.

당선 통보가 시작되면 기대감보다는 실망감과 좌절감이 더 컸다. 우리 모두 한 대상만을 열망하고 사랑했지만 단 한 명만이 사랑을 쟁취했다. 통보가 끝나고 떨어진 것을 확인하면 사랑을 빼앗긴 것처럼 가슴이 저몄다. 당선된 친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축하를 받았다. 친구가 웃는 모습을 보며 저토록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달리 멀고 쓸쓸했다. 이놈의 외사랑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어두운 방, 책상 앞으로 돌아가 또 외로운 시간을 견디며 소설을 썼다.

당선된 친구는 또 다른 힘겨운 싸움을 이때부터 시작했다. 신춘문예와, 소위 메이저라고 말하는 문예지를 제외한 문예지로 등단한 친구 중에는 원고료를 상금 대신 받는 친구도 있었지만 책(당선호, 문예지)을 상금 대신 받는 친구도 있었다. 상을 주니 감사히 여겨라. 등단을 시켜주니, 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해라, 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는, 친구는 문학을 사랑했다. 언제나 모든 것이 그렇듯 간절히 바라고 목마른 쪽이 을이 되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상금 대신 책으로 준다 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예지를 수십 권을 끌어안고 돌아오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가의 길은 더 험난했다. 청탁도 없고, 글을 쓸 데도-이것은 중앙지로 등단해도, 메이저 문예지로 등단해도 마찬가지이다- 없었다. 청탁이 없으니 수입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다시 또 문학에 대한 외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등단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어 사라지는 사람도 많았다. 다시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고독한 섬이 되어 소설을 쓰며 시간을 견뎌야 했다.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어도 써지지 않은 날이 더 많은 날을 견디며 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내 소설이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상 주고 3년 저작권 달라"…'이상문학상' 거부 잇따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김금희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거부하고 우수상을 반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금희 작가뿐 아니라 최은영 작가, 이기호 작가도 상을 반납했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 3년 동안 출판사에 귀속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상을 받은 작품은 다른 수상집에 실을 수 없으며 표제작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었다. 이상문학상은 우리나라 문학상 중에서도 가장 큰 상 중에 하나로 작가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사랑에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 사랑을 더 많이 하는 쪽이 을이 된다. 작가는 문학에 대해서는 언제나 을이다. 사랑하고 열망하기 때문이다. 돈도 되지도 않는 소설을 쓰기 위해 매일, 매시간 인물과 문장과 씨름을 한다.

이번 이상문학상 소식은 그 옛날, 당선 상금 대신 수십 권의 책을 안겨주던 출판사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상의 취지는 독려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가로 산다는 게, 예술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며, 가치 있는 일인가를 알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이 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김금희 작가가 당당한 을이라, 많은 작가들이 당당한 을이라, 당당한 을로 문학을 사랑하여 다행이다. 그 옛날 수십 권의 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친구가 되지 않아서.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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