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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유재석의 놀라운 판단력[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1.04.17 09:03

이번 <무한도전>에선 조정 특집 1탄이 진행됐다. 멤버들이 조정 코치를 만나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조정 코치가 미남이었다. 멤버들은 코치의 외모에 감탄했다. 그때 갑자기 하하가 '너무 잘 생겼다'며 노홍철이 달고 있던 미남 배지를 떼어 그 코치에게 달았다.

순간적으로 불편해지는 장면이었다. 면이나 털 재질도 아니고 겨울 파카였다. 배지를 다는 과정에서 옷이 망가질 수 있다. 아무리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다고 해도 일반인에게 조금이라도 민폐가 있어선 안 된다. 하하의 행동에선 그런 조심성을 느낄 수 없었다.

과거 <일밤>에서 한 코너가 비슷한 일로 시청자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일반인에게 폐를 끼쳤다는 논란이 터져 나와 시청자들이 불쾌해했던 것이다. 그 코너는 금방 폐지됐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가릴 수 있는 명확한 판단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돌발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리얼버라이어티에선 더더욱이나 그렇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유재석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빛난다. 하하가 코치에게 배지를 다는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두들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 순간 유재석이 나서며 '아니 저, 점퍼..'라고 코치의 옷이 훼손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하가 너무 빨리 핀을 꽂았고 상황이 워낙 순식간에 진행돼서 행동 자체를 제지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유재석이 그런 말을 한 순간 마음속에 있던 불편함이 해소됐다.

유재석이 그 말을 함으로써 <무한도전>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일반인을 막 대하는 안하무인의 구도로 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유재석이 나서지 않았다면 조금이나마 불쾌함이 남았을 뻔했다.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국민MC 유재석의 진가를 절감하게 된다. 그 순간에 일반인의 점퍼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유재석 하나뿐이었다는 대목에서, 왜 그가 지금 이 시대의 최고 MC가 됐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장면은 또 있었다. 코치가 조정경기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 콕스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길이 그 단어가 약자냐고 돌발질문을 했다. 코치는 잠시 주춤하더니 일단 약자는 아니라고 답을 하며 그 다음 설명을 이어갔는데, 그 단어의 유래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다. 주저하며 당황하는 것이 어조에서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유재석이다. 그 코치가 한참 주저한 것도 아니고, 설명이 완료된 것도 아니었다. 두 번에 걸쳐서 약 2초 정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말을 이어가는 중이었고, 주춤한 시간과 말한 시간을 다 합쳐 약 4초 정도 되는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일반인 게스트가 위축되고 있음을 간파한 유재석이 즉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유재석은 '선생님! 이들의 얘기에 모두 대답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라며 치고 나갔다. 덕분에 당황했던 코치는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고, 싸잡아 '이들'로 비하당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발하는 상황극을 연출하며 깨알같은 웃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전광석화같은 판단력과 행동력! 이번 <무한도전>을 보며 유재석에 대해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의 반응속도는 야구로 치면 시속 160킬로의 광속구를 가볍게 받아치는 정도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코치가 콕스가 약자냐는 질문을 받고 잠시 주춤할 때 순간적으로 <신입사원>을 볼 때와 같은 불편한 긴장감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유재석의 기민한 대처로 화면 속의 출연자들도 모두 웃고, 시청자인 나의 긴장감도 순식간에 해소됐다. 별로 티 나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유재석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였다.

일반인에 대한 철저한 배려, 지켜야 할 선을 정확히 아는 판단력, 그것을 설교식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재치. 유재석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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