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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황강에서 북악까지'[여해, 바다와 같아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20.01.06 11:58

[미디어스] 아버지가 소위로 임관한 1973년에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한다. 아버지는 강원도 격오지에서 초급장교 생활을 하다가 1977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광주 포병학교에서 고등군사교육반(OAC) 과정을 밟는다. 

19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아버지 동기생 중 몇몇은 진압군으로 광주에 갔다. 공수부대 중대장으로 시내에 투입되거나 보병부대 대위로 외곽에서 광주를 봉쇄했다. 그들은 아버지보다 진급이 빨랐다. 포병장교였던 아버지에게는 그 작전에 합류할 기회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서재를 기웃거리다 누렇게 빛바랜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천금성씨가 전두환의 일대기를 소설로 엮은 그 책의 이름은 ‘황강에서 북악까지’, 부제는 ‘인간 전두환 창조와 초극의 길’이다. 황강은 전 씨의 고향 합천을 흐르는 하천이고 북악은 청와대 뒤 북악산을 말한다.

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 40주년인 2019년 12일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제작한 조형물을 세워놓았다.(연합뉴스)

전두환은 1970년 11월 22일에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장에 뛰어들어 패전 없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총부리를 안으로 돌렸다.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그가 이끌던 반란군은 아군을 쏘았다. 그리고 80년 5월에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짓밟고 대통령이 되었다. 

스스로 피 묻은 역사의 중심에 서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전두환과 달리 아버지는 비주류로 살다 조용히 군 생활을 마감한다. 아버지가 만일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면, 하나회 일원이었다면, 광주 비상계엄군 가운데 한 명이었다면 군인으로서 더 높은 지위에 올랐을지 모르나 운명은 어찌 다행 아버지를 그 자리에 놓지 않았다.

증일아함경에서 앙굴마라는 1,000명의 사람을 해치면 도를 깨친다는 사악한 스승의 그릇된 지도를 믿고 받들어 999명의 인명을 끊기에 이른다.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구멍을 내 끈을 꽂아 만든 목걸이를 찬 그는 어머니를 죽여 마지막 하나를 마저 보태려 했다. 

그때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 가르침을 베푸시니 앙굴마라는 자신의 죄악을 참회반성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성난 군중들이 던지는 돌팔매를 한 점 원망 없이 맞으며 담담히 숨을 거둔다. 

황강에서 북악까지. 그 길에서 전두환은 고통 속에 죽어간 이들의 손가락을 꿰며 쉼 없이 걸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끝내 천 개의 손가락을 채워 권좌에 올랐다. 오랜 친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1988년 11월에 백담사에 몸을 의탁해 2년 넘게 화엄실에 머물면서도 성찰 없는 그다.

그의 나이 곧 구순이다. 그로 인해 가족이나 벗을 떠나보낸 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그가 피해자들을 만나 뉘우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용서할 권한은 오직 그분들이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지껏 나 몰라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라면 생의 불꽃이 꺼져가는 인생의 황혼에 삶에 드리운 어둔 제 그림자를 돌아보며 숙연히 머리를 조아릴 법도 하건만 그는 아니었다. 한 인간에 대한 깊은 절망과 연민이 인다. 

다르마카야붓다(法身佛). 제 마음에 이는 모든 소란 그치게 하옵시고, 포기 없는 자비로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그의 어리석음을 지혜의 등불로 밝혀, 그가 두려움 없는 용기로 희생자 앞에 나아가 참회하며 지은 대로 달게 받는 부처님의 참 제자 되게 하소서.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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