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기자와 앵커로 활동하던 김은혜 씨가 엊그제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다. 또 미디어스 양문석 편집위원의 기사(양성우, 김은혜를 변절자로 몰아가면?)에 따르면, 교사와 시인이자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양성우 씨가 이명박 캠프에 몸담았다고 해서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경우를 두고 ‘변절’이니 아니니 논란을 벌이는 것이 재미는 있으나, 그렇게 자리를 옮기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따질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 청와대 부대변인에 발탁된 MBC 김은혜 기자가 2월12일 서울 여의도 MBC 경영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MBC

다만 김은혜 전 MBC 기자가 자신의 청와대 행을 확인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정치를 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는 보도를 보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한번 되짚어 본다.

청와대, 한국정치 ‘빅뱅의 근원’이자 ‘블랙홀’

그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면 4년 전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출마) 제의를 받았을 때 갔을 것”이라며 “(자신의 청와대 행) 결정은 정치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얼마 전부터 ‘퍼블릭 서비스’ 분야에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제가 추구했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런 얘기도 했다. “(자신은) 정치를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보다 상처받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행정적인 보살핌이나 어두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결심하게 됐다. 제 가치를 퍼블릭 서비스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제 대답의 전부다.”

“기자로서의 가치를 이루고 싶었다면 굳이 청와대로 갈 필요가 없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퍼블릭 서비스는 사실 정당에서 하기 힘들지 않은가. 정당에선 입법 주체로서 활동하는 거다. 청와대는 정치보다는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행정적인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김은혜의 정치에 대한 몇 가지 오해

기자는 김은혜 씨의 이 같은 발언을 듣고 ‘정치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김은혜 씨가 청와대에 가서 부대변인과 외신담당 비서관으로 하게 될 일이 바로 ‘정치’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가 얘기한 것처럼 “상처받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행정적인 보살핌이나 어두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치고 정치의 목적이다. 그는 정치를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같다.

▲ 한겨레 2월13일자 8면.

둘째, 정치냐 아니냐, 혹은 정치인이냐 아니냐는 직책과 직급의 높낮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행위와 목적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셋째,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정치행위다. 청와대는 한국 정치의 ‘빅뱅의 근원’이자 ‘블랙 홀’이라고 할 수 있다. 권부의 상징인 청와대 부대변인이 할 역할이 ‘정치’가 아니라면 무엇을 정치라 할 것인가?

김 씨는 ‘좁은 의미의 정치인’의 자질이 엿보인다. ‘정치를 위해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면서 자신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권력이양 시기에 되짚어보는 정치인의 분류

‘폭넓게’ 해석하면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각자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다만 정치를 직업으로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와는 별도로, 기자는 넓은 의미의 정치인을 편의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정치운동가(political activist), (직업)정치가(politician), 경세가(經世家: statesman)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 문제로 국민들, 특히 가난한 서민들을 가뜩이나 짜증나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어 가급적 영어를 쓰고 싶지 않은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므로 널리 이해해 주기 바란다.

대표적인 정치운동가 장기표 선생

정치운동가(political activist)는 그야말로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치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생각나는 이가 장기표 씨다. 장 씨는 오랫동안 어떤 정당에도 몸담지 않고 정치운동을 해 오다, 작고한 김윤환 전 민자당 대표가 만든 민국당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으나, 그는 여전히 정치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운동가는 정당이나 국회 등에 진출해 직업적으로 자신의 정치 소신이나 철학을 펴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 등의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담이지만 한 때 재야에서 나라를 이끌 유망한 지도자 반열에 있던 장기표 씨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과 함께 세계일주를 하고 새로운 문명 질서를 설파하고 다님으로써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때 언론노련에서 장 씨를 초청해 특강을 들은 뒤 간담회 자리에서 그에게 한 얘기가 생각난다.

요지는 이랬다. “장 선생이 갖고 있는 정치 이상과 철학을 ‘정치운동’으로 펴는 것과 정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어 합법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치는 현실이다. 여당으로 들어가라고는 하지 않을테니 하루 빨리 제1야당으로 들어가 재야에서 함께 활동했던 국회의원들과 힘을 합쳐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떠냐”고.

장 선생은 그 후에도 한참 동안 정당에 들어가지 않고 정치운동가로 남았다. 그러다 몇 년 뒤에 무소속으로 서울 동작에서 출마해 2만여표를 얻고도 낙선하였다. 만약 그 때 장 씨가 제 1야당 후보로 동작에서 출마했더라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음에 틀림없다.

그 후 장 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꿋꿋하게 정치운동가의 길을 걷는가 싶더니, 어느 날 고 김윤환 씨가 자신이 성사시킨 3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뒤 창당한 민국당에 들어가기도 해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장기표 씨는 장기표류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 정치인의 부류가 직업정치인(politician)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정당정치인으로 불리는 그룹이다. 물론 무소속 직업정치인도 있다. 원래 정치와 권력의 세계가 비정하고 온갖 술수와 정치공학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모든 정치(행위)의 목적과 본령은 국리민복과 경세제민

▲ 경향신문 2월14일자 7면.

어디까지나 정치의 목표와 본령은 국리민복(國利民福 )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직업)정치인들은 국리민복을 위한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권력쟁취 자체가 목표인양 마키아벨리즘으로 무장한 채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정치를 해왔다.

세 번째가 경세가(statesman)다. 권력 투쟁 혹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은 이미 정치 이상을 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와 수단을 확보했으므로 직업정치인(politician)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권력정치(power politics)보다는 경세제민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5년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쉬운 것은 노 대통령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대 어떤 대통령과 달리 실제로는 정당정치로부터 사실상 손을 떼다 싶히 했으면서도 많은 국민들에게는 여야정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일단 대통령직에 오른 이상,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든,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국리민복, 즉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고 살찌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좁은 의미의 정치가(politician)'에서 '경세가(statesman)'로 변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 ‘승자독식’ 논리에 빠져 국민과 비판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런 차원에서 오는 25일 취임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정치 이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여야정당을 상대로 하는 정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세제민과 국리민복이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 드러난 인수위원회의 활동 내용이나 행태 그리고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자의 행태와 결정과정 등을 보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기본이 너무 안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좀 심하게 말하면 건전하고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서도, "‘승자가 독식하는(The winner takes all)’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말이 많느냐“는 식의 인상을 받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고 했다. 게다가 5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dynam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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