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에 원조 댄싱퀸 김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김완선을 쫓아다니던 루머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보다 그녀의 혈통이었다.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김완선의 모계 혈통은 말 그대로 로열패밀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이모 한영숙 명인에 대한 이야기만 나왔지만 전통춤을 아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더 깊은 혈통의 의미가 있었다. 바로 한영숙의 아버지 한성준이다.

한성준은 한국 민속춤의 아버지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모든 민속춤은 모두 그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한성준은 비단 춤만이 아니라 판소리 고법에도 당대 최고의 솜씨를 가졌다. 그리고 판소리가 현재까지 이어오게 한 발판인 조선성악회(1933년)의 창립에도 참가하는 등 전통예술의 전승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물론 가장 뛰어난 업적은 일제를 거치며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전통춤을 집대성한 점이다.

김완선은 한영숙이 88올림픽에서 승무를 췄다고 했는데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살풀이를 잘못 말했다
특히 한국 민속춤의 백미로 손꼽는 살풀이, 승무 등이 한성준에 의해서 현재의 형태로 완성될 수 있었다. 그에게 춤을 배운 사람들은 이후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 전통춤의 중심이 되었다. 딸인 한영숙과 이매방은 민속춤에서, 조선왕조 마지막 무동이었던 김천흥은 궁중무용의 전승에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근대의 춤을 현대로 연결시키면서 동시에 발전시킨 한국 무용사의 보배들이다. 한마디로 한성준 없이 현재의 전통춤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능할 정도로 업적이 큰 인물이다.

김완선이 그 핏줄을 이었으니 춤을 그리 잘 추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다만 모계의 소질을 다른 방면에서 꽃피운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이로써 심수봉에 이어 가요계에 놀라운 전통 예인의 혈맥을 또 확인하게 됐다. 심수봉은 이제는 사라진 판소리 중고제의 명가 심정순 가의 혈맥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국민MC 유재석의 부친도 중도에 그만뒀지만 현재 국악고등학교의 전신인 국악사양성소 출신이다. 알게 모르게 예인의 핏줄은 끊어지지 않고 모습을 달리해서라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김완선의 놀라운 혈통만큼이나 또 놀라웠던 것은 그녀에 대한 루머가 대부분 터무니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강호동이 루머 종결자라는 신조어를 붙일 정도로 김완선 아니 그 시대의 연예인들은 일방적인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 양방향성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없었던 시절에는 미디어는 거의 폭력이나 다름없이 루머를 기정사실화했다. 물론 모든 설이 근거무근은 아니겠지만 특히나 여성 연예인에 대한 루머는 많은 부분 터무니없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KBS 퀴즈탐험에 출연해서 정답인 닭을 ‘닥’ 혹은 ‘닦’으로 썼다는 루머는 당사자로서는 대단히 치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한자도 아니고 한글을 틀리게 썼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김완선의 대답이 우문현답이었다. 자신이 닭띠라면서 아무리 한자를 몰라도 자기 이름은 쓸 줄 알지 않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또한 홍콩재벌과의 결혼과의 루머에는 “제 소원이에요. 소원”이라는 반어법을 쓰는 것을 보면 김완선이 멍청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 솔로 여가수로서는 결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성공을 거두었던 김완선이 매니저인 이모로부터 13년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둘 사이가 단지 매니저와 가수가 아닌 친척사이라 가능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김완선도 그렇거니와 그녀의 가족도 참 무던했다. 그러나 그런 무던함 때문에 말년의 이모는 병원비도 없을 정도로 비참함을 겪어야 했으니 세상이 좋은 게 좋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김완선이 이모에게 “진작 나한테 돈을 좀 줬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란 말을 해야 했고, 그것이 이모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됐지만 성공한 여가수 김완선에게는 그 시절의 보람은 전혀 남아있지도 않고, 이모 역시 세상을 이미 떠났다. 연예인의 삶이 무대와 실제가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김완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아픈 사실이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13년 동안 돈을 받지 않고도 이모를 따를 정도로 착하다는 점이다.

무릎팍이 진행되는 동안 깐죽도사 유세윤은 김완선의 눈을 계속 놀려댔지만 그녀의 데뷔 후 26년의 이야기로 보아 무서운 눈이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도 착한 눈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그녀가 루머도 떨치고, 아픈 추억도 덜어내고 성숙하고 부드러워진 시선으로 가요계에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무대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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