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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의 연결 고리, 일리네어 레코즈[culture critic] '11:11'을 통해 읽어 보는 2010년대 한국 힙합 장르사
윤광은 | 승인 2019.12.30 12:18

[미디어스] 일리네어 레코즈는 2010년대 한국 힙합을 상징하는 레이블이다. 래퍼 도끼와 더 콰이엇, 빈지노가 뜻을 모은 이 레이블은 2011년 결성됐고, 곧이어 한국 힙합의 새로운 메인스트림이 된 미국 힙합의 주류 관습을 앞장서 퍼트렸다. 00년대까지 붐뱁 사운드와 내면 성찰적 가사, 진정성으로서의 힙합이 주류였던 한국 힙합은 트랩 사운드와 돈 자랑 가사, 스타일로서의 힙합을 새로운 관습으로 맞이하였다. <쇼미 더 머니> 시대가 열린 이후, 한국 힙합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전환되는 데 일리네어 레코즈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지금까지도 장르 신 리스너들은 물론 동료 래퍼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며칠 후 2020년으로 또 다른 십 년의 달력이 찢어지는 지금, 2010년대 한국 힙합을 돌아보자면 일리네어 레코즈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야 한다.

2014년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11:11’은 일리네어 레코즈가 장르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압축한다. 그간 일리네어 레코즈를 향한 평판은 두 부류였다. 한국 힙합의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 체인저’로 헌액된 것이 주된 평판이지만, 한국 힙합을 획일화한 장본인으로 빈축을 산 적도 있다. 그러나 '11:11’은 장르 신의 변화와 단절이 아닌 ‘연결고리’로 가늠되어야 한다. 2014년은 과도기였다. 일리네어는 그 이삼 년 전부터 스웨거 가사와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로 내기를 걸고 있었고, 이 해에는 <쇼미 더 머니 3>에 출연했다. <쇼미 더 머니>는 세 번째 시리즈에 이르러 흥행하며 상업성이 궤도에 올랐고, 힙합은 대중가요 소비자들에게 이전의 한국 힙합과 다른 면모의 트렌디한 음악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장르 신 관습의 전환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11:11’의 타이틀곡은 일리네어 공전의 히트곡 ‘연결고리’다. 그간 이 앨범에 관해 몇 편의 리뷰가 발행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왜 저 트랙의 이름이 연결고리인지, 왜 MC 메타가 참여했는지 거론한 사람은 없었다. 별 내용 없는 가사와 맞물리지 않는 밑도 끝도 없는 네이밍에다, 트랩 사운드로 미장한 트랙의 훅을 그와 대척점에 있는 래퍼가 불렀는데도 말이다.

일리네어 레코즈 레이블 앨범 [11:11]

이 각도에서 질문해본다면, ‘11:11’의 핵심은 트랙 리스트의 무게 중심에 자리잡은 ‘A Better Tomorrow’다. 이 트랙은 여러모로 앨범 내에서 이질적이다. 우선 트렌디한 사운드의 나열 속에 동떨어진 클래식한 붐뱁 비트다. 가사의 서사성 대신 가사의 양식화를 추구한 앨범에서 가장 가사의 비중이 크고, 메시지를 발표하는 논설문의 성격이 강하다. 다섯 명의 래퍼가 훅도 없이 10마디, 24마디, 32마디, 40마디씩 장문의 벌스를 뱉는다. 그만큼 할 말을 많이 한 트랙이란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힙합의 파이오니어이자 ‘1세대 래퍼’의 대명사, MC 메타와 션이슬로우가 참여했다.

‘A Better Tomorrow’는 “신과 구"를 잇기 위해 제작된 "연결고리"다. 가사, 사운드, 플레이어를 아우르는 프로덕션의 모든 방면에서, 2010년대 들어 격변해 그 이전과 이후로 양분되는 장르 신의 단절적 경향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더 나은 내일’을 갈구하는 주제의식이 스웨거 힙합의 문법, 자기 계발과 자수성가로 동어 반복되는 가운데, MC 메타와 션이슬로우는 그 주제의식을 자기 시대의 문법으로 변주해 축사를 얹어준다. 같은 의미에서, 이 트랙에서만큼은 앨범 내에서 독보적 랩 스펙을 과시한 빈지노가 아니라, 가장 소박한 랩 스킬에 머무른 더 콰이엇이 주인공이다.

콰이엇은 일리네어 창립 이후 전환한 작사 경향 대신, 00년대 대표적 언더 힙합 레이블 소울 컴퍼니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을 방불케 하는 진중한 톤의 가사를 뱉는다.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우린 한국 힙합의 자존심, 라면으로 치면 농심” 같은 허당스러운 표현도 이 곡엔 없다. 그는 자신이 쫓아온 건 돈이 아니라 꿈이었으며, 돈은 꿈 뒤에 따라온 선물일 뿐이었다고 명료한 설명을 전한다. 이는 그동안 뱉어왔던 ‘돈 자랑 가사’에 나름의 내면을 부여하는 작업이며, 스웨거 힙합의 관습이 앞선 시대의 관습 진정성의 계보에 삽입되었다. 콰이엇은 야망 없이 출세만 노리는 래퍼들을 조소하고, MC 메타는 영혼 없이 출세를 꿈꾸는 래퍼들을 향해 일갈한다. 정확히 반대방향에서 주제의식에 접근해오는 “신과 구의 연결고리” 속에 두 시대의 관습은 접점을 찾고 융화된다.

이런 해석의 가늠쇠를 겨눌 때 알 수 있다. ‘연결고리’는 MC 메타가 즐겨 뱉는 단어, 연결고리의 오마주이며 힙합 신의 연결고리를 자임하는 선언이다. 아마도 이상의 프로덕션을 주도한 건 콰이엇이었을 것이다. 그는 도끼와 함께 후배 래퍼들에게 관심을 갖고 후원해 온 한편 MC 메타와 타이거 JK 같은 시니어 래퍼에게 존경심과 특별한 감정을 밝혀왔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트랙은 'We Here 2'다. 콰이엇은 자신에게 귀감이 되고 도움을 준 래퍼들의 이름을 Shout Out 한다.

"난 점점 나의 영웅들을 닮아가 (...) / Tiger JK 아님 MC메타 그들이 날 여기에 있게 한 선배이기에 / can't forget Double D yea Double T / 날 track에 처음 껴준 형들은 그들이었어"

이는 앞선 세대의 언더 신에 소속된 채 시니어 래퍼들과 교류했던 그들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래퍼 더콰이엇(왼쪽)과 도끼 (연합뉴스 자료사진)

돈을 번 래퍼는 많고 으스대는 래퍼도 많다. 하지만 도끼와 콰이엇은 장르 신의 전통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스윙스, 음악 외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장르 신에 부재중 푯말을 걸었던 ‘이방인’ 이센스, 아이돌에서 힙합 신으로 이적한 박재범 등 동년배 플레이어들과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관습의 선구자인 동시에 장르 신에 대한 역사관을 품은 중간자다. 어느덧 거의 모든 래퍼가 자기 과시를 재현하는 시대에, 이 점이야말로 그들을 다른 래퍼들과 구분 지어주는 가장 뚜렷한 정체성이다. 콰이엇을 랩 게임을 바꾼 사람이라고만 이해한다면, 그에게서 엿보이는 장르 신의 계보에 대한 적자 의식을 헤아릴 수 없다.

‘연결고리’라는 트랙을 새로운 관습의 출범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문’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 신의 어제와 오늘을 묶어주는 ‘음악적 편철’임을 재발견해야 한다. ‘11:11’에 특별함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장르사적 의의다. 최신 랩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이 곧 실력의 잣대로 통하고, 과거의 족적은 퇴물이라고 비웃음을 사는 시대에 저 의의는 강조되고 재조명되어야 한다. ‘11:11’에 던질만한 반문이 있다면, 앞서 말한 장르사적 의의가 짜임새 있는 음악으로 구성되었느냐는 것뿐이다.

콰이엇은 또래 80년대생 래퍼들과 함께 ‘다모임’이란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발표한 노래 ‘아마두’는 연말 음원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 노래는 스웨거 힙합의 문법을 취하는 기본 스탠스 속에서 듣는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잘될 것이라고 격려를 전하는 가사인데, 음악적 성취를 떠나 이전까지 소비되던 날 서고 오만한 힙합의 이미지와 다른 각도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 한 기획이 느껴진다. 역시 그는 팔로알토와 함께 ‘국힙 상담소’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후배 래퍼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일련의 행보는 그동안 장르 신이 상업적으로 의존하던 <쇼미 더 머니>와 별개로 자립할 수 있는 대중성 콘텐츠, 혹은 신의 구심점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그를 비롯한 시니어 래퍼들의 책임감이 2010년대 이후, <쇼미 더 머니> 시대 이후의 한국 힙합이란 ‘공동체’를 성찰적으로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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