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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야생 소녀야, 울어도 돼[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김은희 | 승인 2019.12.30 08:30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울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나는 소녀를 야생 소녀라고 불렀다. 야생 소녀는 세상을 향해, 그들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다.

괜찮아. 나는 울지 않아. 당신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절대, 절대 쓰러지지 않아.

그들은 당연히 야생 소녀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울면서 용서를 구할 줄 알았다. 야생 소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울지 않는 야생 소녀를 보며 약이 올랐다. 반드시 울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야생 소녀가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해도, 옷을 다르게 입기만 해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고함치고, 욕설을 퍼붓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난다고 그들의 잣대를 들이댔다. 야생 소녀는 옷 따위를, 배경 따위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밝게 웃고 있는 행복한 모습을 봐주기를 바랐는데, 그들은 항상 옷에, 옷 속에 감춰져 있는 가슴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생 소녀에 대한 질타와 비난은 변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미난 놀이처럼 손에 돌멩이 하나씩을 쥐고 야생 소녀를 기다렸다. 야생 소녀 주위를 기웃거리며 소녀가 무엇이든 하기를 기다렸다. 슬슬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야생 소녀가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야생 소녀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야생 소녀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괜찮지 않았다. 돌멩이는 아팠고, 상처를 만들었고, 옹이가 되어버렸다. 야생 소녀가 아파하든 말든 그들은 관심 없었다. 맹목적으로 비난을 일삼는 그들은 오직 손에 쥔 돌멩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치명적일까. 이래도 괜찮아, 이래도 견딜 수 있겠어, 백기를 들고 살려달라고 말하란 말이야. 그들은 잔혹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변해 버렸다.
 

꽃다운 나이인 25살에 떠난 가수 겸 배우 설리(CG) [연합뉴스TV 제공]

결국. 
나는 지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하던 야생 소녀가 죽었다.
야생 소녀를 향해 돌을 던지던 그들은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고 손을 감추고 사라졌다. 야생 소녀는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고,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고,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야생 소녀가 어른이 되고, 더 깊어지고, 아름답게 늙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일면식 없는 야생 소녀의 죽음으로 한동안 우울했다. 스무 살 중반, 이제 막 인생의 초반전이 시작될 나이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일반인이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딜 나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격려 속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유연해지고, 조금씩 단단해지며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될 나이었다.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이것은 그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하는 질문이다. 돌을 던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른 척했다- 그들에게도 딸이 있고, 누나가 있고, 언니가 있고, 여동생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야생 소녀를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주고, 감싸 안아주었다면 소녀가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야생 소녀에게 잘 나이가 들 기회를 빼앗았고, 우리도 야생 소녀가 별 탈 없이 늙어 가는 모습을 볼 기회를 잃었다. 죽지 않았다면 이십 년쯤 후, 분명 썩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냉철한 이성은 지니고 있지 않았어도, 뜨거운 감정만 남아버렸다고 하여도 누군가를 토끼 몰 듯 몰아서는 안 된다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으므로 적어도 맹목적으로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야생 소녀를 찾아 돌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야생 소녀와 야생 소년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야생 소녀’가 잘 자라 어른이 되도록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야생 소녀가 맞아 죽지 않도록, 세상의 수많은 야생 소녀와 야생 소년을 위해.

그리고 야생 소녀야.
괜찮아, 울어도 돼.

*‘우리의 야생 소녀’는 문학동네로 출판된 윤진화 시인의 시집 제목 <우리의 야생 소녀>를 인용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김은희  postboa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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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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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소녀 2019-12-30 10:23:53

    야생에서 살다가 구조된 이를 다루는 작품 중에 카스파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구해준 사람들에게 제도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다
    결국에 그들이 알려준 신문물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야생소녀와 소년들이 제도 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구석으로 몰아대던 수많은 이 중에 나도 하나가 아니었을까 돌이켜 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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