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토요일 SBS <칼잡이 오수정>의 한장면이다. 처음 승규(성동일 분)는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믹조연에 불과했다. 칼고(오지호 분)의 매니저 역할을 맡아 언제나 주인공 옆을 지켰다. 미국에서 왔으면서도 전라도 사투리를 진하게 써서 드라마에 적당한 웃음을 줬다. 오수정 주변에 친구들이 배치되어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듯이, 승규는 칼고의 마음을 대신 읽었다.

심지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있는 등장인물 설명 코너에서도 그는 '그외 인물' 일 뿐이다. '칼고의 매니저, 우탁의 사촌 형'이라는 달랑 한줄의 해설이 전부다.

이랬던 그가 이영애(안선영 분)을 만나며 로맨티스트로 변신했다. 이영애를 만나거나 통화를 할때면 전라도 사투리와 영어를 섞어 쓰면서 서울말흉내를 내는 말투가 압권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기반이 되는 웃찾사의 '서울나들이'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

주인공들의 연애가 얽히고 설키는 만큼 승규의 사랑도 쉽지 않다. 첫눈에 반했으나 상대는 유부녀다. 이영애와 승규는 서로가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참고 참고 또 참지만 마음을 숨기는기가 어렵다.

15일 방송에서는 결국 이영애의 남편과 몸싸움도 벌였다. 양복 웃옷을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기에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낙엽까지 날린다. 그렇다. 드디어 멜로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어떤 결투장면에서도 보지 못했던 꿀밤공격까지 가세해 코믹도 잊지 않았다.

진짜 명장면은 뒤에 나왔다. 칼고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지 승규도 따라서 비행기를 타게됐다. 이영애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다. 이영애가 오수정(엄정화 분) 방에서 옷장문을 열고 옷을 고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영애 : "여보세요."
승규 : "저, 규에요."
영애 : "알아요."
승규 : "저 시방 에어포트에 있어요."
영애 : "알아요."
승규 ; (우느라 말을 제대로 못하며) "저 전화 로밍해 갈꺼거든요. 전 영원한 영애씨의 119에요. 언제든 전화주세요""

영애 : (흐느끼며) "미국은 911아닌가?"
승규 :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아! 저는 영애씨의 영원한 911이에요. 나갈게요. 힘들면 있잖아요. 언제든 전
화주세요. 그라고 나는 영애씨의 안전망이니까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날 믿고 뛰어내리세요."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영애씨 시방 울어버리세요?"
영애 : "아니오."
승규 : "안되지라"(결국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랑께 그렇게 울지말고요. 씩씩하게 살아부리세요.
그람" (손목시계를 본 후 애써 웃으며) "영애씨의 119는 인자 보딩하러 가야겠어요. 그럼 이만."

이 대사를 빛나게 해준 힘은 연출에 있었다. 승규는 영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쓰고 또 쓰며 준비를 한 모양이다. 화면이 전환되어 승규가 나올 때는 구깃구깃한 종이의 여백에 검은색 볼펜으로 깨알같이 쓴 글씨가 적혀있는 장면부터 나왔다. 승규는 그것을 읽으며 영애에게 911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어서는 안되는 비극적인 현실에서 자신의 마음을 애둘러 표현한게 아니겠는가. 이날만은 칼고보다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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