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지영준(코오롱)은 한국 마라톤의 '대역사'를 이을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이전부터 이봉주 후계자로 주목받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제대로 떠오른 지영준의 성장은 침체기에 빠졌던 한국 마라톤에 한 줄기 빛과 다름없는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 특히 육상 종목 가운데서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주목받은 마라톤이었던 만큼 올해 열리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지영준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지영준이 최근 잇달아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3월에 열린 서울국제마라톤, 그리고 지난 주말에 열린 대구국제마라톤에 잇달아 출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 지영준 선수ⓒ연합뉴스
지영준을 개인 지도하고 있는 정만화 상지여고 감독은 "본인의 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만 무리한 출전이 정작 중요한 대구세계선수권 참가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면서 불참 이유를 밝혔습니다. 물론 대구 세계선수권까지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만큼 컨디션 조절 하나하나가 중요하기에 겉으로 보면 지영준의 불참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등 중요한 대회를 치르기까지 세심하게 컨디션 조절 뿐 아니라 적당한 실전 경험도 쌓아야 하지만 세계선수권을 6개월 앞둔 지난 2월부터 잇달아 대회를 포기한 것이 뭔가 석연치 않은 면이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대회 전날까지 나서겠다고 했다가 대회 당일이 돼서 갑작스레 잇달아 포기할 만큼 컨디션 난조로 잇따랐다면 과연 코칭스태프나 육상계가 지영준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황영조, 이봉주가 그랬고, 수영의 박태환도 그렇지만 개인 종목에서 적당한 실전 경험은 큰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하는 과정 가운데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전의 70-80% 수준의 경기력을 펼치면서 자신감도 쌓고, 큰 대회에서 맞붙을 상대를 미리 탐색하면서 전략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컨디션 조절만큼이나 꽤 중요한 준비 과정인 게 사실입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던 지영준 역시 그런 의미에서 3월에 열린 서울국제마라톤, 지난주에 열린 대구국제마라톤 출전이 매우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성적, 기록도 중요하겠지만 실전에 버금가는 경기력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는 계기도 마련하고 미리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면에서 어느 정도 비중 있게 준비하고, 코칭스태프 차원에서도 세심하게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지영준, 그리고 코칭스태프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2월에 열린 일본 마루가메 하프마라톤에서는 17km까지 뛰다 레이스를 포기했으며, 3월에 열렸던 서울 국제마라톤에서는 대회 당일 감기 몸살로 포기한다는 통보를 대회 주최측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4월에 열린 대구 국제마라톤에서도 대회 당일 오전 허벅지 근육통을 이유로 출전 포기를 알리면서 3개 대회 연속으로 정상 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풀코스를 뛰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라는 말만 남긴 채 대회 당일 오전에야 포기를 한 것 자체가 과연 제대로 대구 세계선수권에 대한 준비 과정이 이뤄지고 있느냐에 대한 부분까지 의심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면 3,4월에 열린 국내 대회 가운데 한 대회에만 출전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든지, 아예 어느 정도 몸을 만들고 5월 정도에 해외 대회에 출전해 컨디션 점검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틀어지면서 큰 대회 실전 4개월을 앞두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지영준의 기량이 그렇다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에 처진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시안게임 이후, 많은 행사 참가를 포기했을 만큼 지영준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만큼 몸만들기도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순간에 코칭스태프, 나아가 육상계가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저 팬들에게 죄송하다, 잘 준비해서 세계대회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말로만 달라지겠다는 자세가 정말로 도움이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창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가 개인적으로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많은 도움을 줘야 하는 코칭스태프, 주변 환경에 대한 요소들을 지금이라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겨우 잡은 한국 마라톤 부흥의 기회를 완전히 접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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