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2019년이 저문다. 한 해를 보내는 저마다의 감회가 있을 터이다. 이맘때쯤이면 각 언론사는 한 해 결산의 소식을 전하고 그중에 '올해의 책'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올 한 해 어떤 책이 기억에 남는가? 질문을 바꿔볼까? 올해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 도서관에서 하는 방과 후 수업에서 아이들이 '전 책 안 읽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절. 기생충 박사 서민의 말대로 어려서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서'에 너무 치여서일까.

독서가 아니라도 SNS에 유튜브에, 웹툰 등 시선을 사로잡을 이야깃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책은, 독서는 생경한 문화적 행위가 되어간다. 당연히 독서, 그중에서도 '종이책'의 운명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하물며 호구지책이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이라면 더더욱 걱정이 깊을 수밖에. 그래서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글로 먹고살 수 있는, 몇 안 된다는 '전업 작가' 중 한 사람 김영하 작가가 나섰다. 김 작가는 프랑스, 독일 등 책 문명의 산실을 직접 발로 뛰며 책의 운명을, 독서의 미래를 점쳐본다.

종이책의 운명

tvN shift 2020 ‘책의 운명’ 편

'성인의 40%가 1년간 종이책 한 권도 안 읽어....'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인터넷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한 현재,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종이로 된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단말기의 스팟 영상에 길들여지는, 스크롤로 주루룩 내려가는 서사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려한다. 독서는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위한 시간과, 그 시간에 걸쳐 책과 씨름하며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공감하려는 노력말이다. 물론, 그 노력에 뒷받침되는 어휘 등등의 이해력은 옵션이다.

그런데 한 시간짜리 드라마가 길어서 오가는 출퇴근 길에 몇몇 '편집된 영상'으로 드라마를 보는 시절에 과연 온전히 한 권의 책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 가능할까? 베르나르 작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한 시간, 아니 30분의 집중도 힘들어한다고 한다. 당연히 책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사라진 책의 역사>를 쓴 뤼시앵 플라스트롱은 종이책 이후의 시대를 비관한다. 무엇보다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어휘력 부족 등을 들면서 생각의 깊이가 종이책 시대에 비해 한결 경박해 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출간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아 반품 창고로 향하는 책들도 있다. 김영하 작가가 찾은 책들의 무덤, 그곳엔 우리에게 낯익은 제목의 책들도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이제 책으로서의 소명을 다한 채 폐지가 되어 파쇄기로 향한다.

tvN shift 2020 ‘책의 운명’ 편

다큐는 실험을 한다. 서점 매대에 그간 놓이지 않았던,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올려놓아 본 것이다. tvN이라는 익숙한 콘텐츠를 알아본 사람들이 책을 집어들어 본다. 실험 결과 전월 대비 평균 25배나 판매가 늘었다. 그러니 서점 매대에 놓이지 않고 꽂혀있는 책은 이미 OUT이라는 얘기다. 실제 서점에 가 보면 tvN <알쓸신잡>에 출연한 유시민, 김영하 등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는 걸 알 수 있다. 책 자체보다는 광고, 매체 등의 영향이 어느새 우리 출판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독서실태 조사에서, 책을 읽는 상위 소수의 사람들이 안 읽은 하위 56.4%의 사람들보다 13배나 더 많이 책을 사고 읽는 현상은 ‘읽는 사람만 읽는다’는 또 다른 독서 시장의 편중을 드러낸다. 또한 친절한 협업 필터링(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이용자에게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CF, Collaborative Filtering)이 한편에서는 친절한 독서 안내자가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독서를 핑계로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꼭 책이어야만 할까?

tvN shift 2020 ‘책의 운명’ 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점점 더 읽지 않는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는 독서가 핫하다. 출판계의 사업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서점을 통한 매출 대신, 온라인 서점을 통한 판매가 증대되고, 글자 책이 아닌 전자책 사업 분야에서 활황을 보이고 있다.

문자를 책으로 접한 세대에게 책은 소중한 문화적 매체이다. 여전히 책을 사서 집안의 서가에 소장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책이 정보를 전달하고 지혜를 담고 있는 물건이라 정의했을 때 그 정의에 걸맞은 책의 존재는 달라지고 있다고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단언한다. 즉,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종이로 된 책을 읽지 않지만, 읽는 행위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하루종일 읽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메일과 인스타와 페북이 대신하듯,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웹툰, 웹소설, 블로그 등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소비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스타에 자신이 읽은 책을 인증하는 세상이다. '정보를 재구성해 압축한 에디션'을 책으로 접한 세대에게 오늘날은 책의 세기말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앱 등 무형의 가이드북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하루종일 접하는 세대는 이미 책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연한 웹소설, 그 작가만 9천 명이라니 어쩌면 이 시대는 읽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일지도.

tvN shift 2020 ‘책의 운명’ 편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그토록 아쉬워해 마지않는 종이책 역시 역사적이고 한시적인 문화적 산물임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다큐는 짚는다. 책 이전에는 소리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고전들이 책 이전에 소리로 구전되어 오던 노래이며, 시였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책을 반대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 것만이 진정한 사상의 교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시대의 책은 어쩌면 오늘날 웹소설처럼 '사상의 인스턴트화'라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처럼 책으로 대변되는 정보와 지혜는 언제나 시대적 플랫폼의 흐름을 타고 변화해 왔다.

그러기에 종이책의 절멸을 고민하는 시대에 대한 처방은 제각기 다르다. 독일의 도서관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해력의 기본을 말하고 듣기라고 정의 내려, 책을 읽어준다. 이런 구술의 방식은 '오디오북', 혹은 '독자와의 만남에서 저자의 책 읽기'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독서 문화로 그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중이다. 김영하 작가 역시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북'의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이런 시대에 역으로 오프라인 서점을 개설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형성된 독자의 평점이나 리뷰를 같이 전시하며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플랫폼 기반의 맞춤 추천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된 형식이다. 즉, 출판된 책이라는 형식이 양방향의 플랫폼을 통해 지평을 확장해 나간다. 또 다른 세계적 서점인 인키트의 경우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저자 배경을 삭제한 채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코자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구토>, <어린왕자> 등의 작품을 찾아내어 출간한 전통적인 프랑스의 출판사 갈리마르의 경우는 15명에서 20명의 작가를 기반으로 하여 몇 번의 심사과정을 거쳐 좋은 책을 가려내고자 한다. 이제는 출간되지 않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에스프레소 한 잔이 완성되는 동안 책을 만들어 주는 새로운 방식의 출판사도 있다.

tvN shift 2020 ‘책의 운명’ 편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여전히 책을 위한 다양한 모임과 이벤트도 지속되고 있다. 부산의 호텔과 서점을 중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밤을 새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심야 책방 이벤트라거나, 북팅, 북토크, 북맥 등 다양한 방식의 책 읽는 모임을 찾고자 한다면 그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2주간에 걸쳐 프랑스로 독일로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으로 6개월의 여정을 담아낸 <책의 운명>은 '주마간산'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담으려다 보니 꿰어야 할 구슬들이 흩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저 책을 안 읽는다는 고민에 주저앉지 않고 독서라는 행위를 시대에 맞춰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신선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고의 우물을 파헤치는 '독서'란 행위에 대해 고민해 볼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파피루스가 역사적 유물이 되었듯, 미래의 언젠가는 우리의 종이책들을 박물관에서 만나게 될까? 하지만 아직은 사고의 고전적 원형으로 이 시대 책은 아직은 고리타분하지만 건재하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 건재함에는 여전히 활기차게 움직이는 부산의 책방 골목처럼 책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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