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지난 20일 옛 광주 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40여 구의 유골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와 광주 교도소 측은 1972년 교도소 부지 이전 당시 이장하며 안치된 시신으로 보고 있지만, 5·18 재단 측은 5·18 희생자 유골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조진태 5·18 재단 상임이사는 23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40여 구의 유골 중 어린이로 추정되는 유골이 나온 점을 두고 “교도소 무연고 수용자 공동묘지인데 어린이 유골이 나왔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되지 않냐”며 “5·18 때 희생당한 사람 중 초등학생도 여러 명 있고 현재 5·18 묘지에도 신원 파악이 안 된 시신 중 8살로 추정되는 시신이 현재 암매장되어 있기에 강한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일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유골 40여기를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에 솔로몬로파크를 조성 중인데 1980년 항쟁 당시 행방불명된 5·18 희생자 다수가 교도소에 암매장됐다는 증언이 나온다. 사진은 전날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유골의 모습. 2019.12.20 [5·18부상자회 제공 영상 캡처] (사진=연합뉴스)

지난 20일 법무부가 광주교도소 부지 내에 무연분묘 개장 작업을 하던 중 4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신원미상의 유골들은 2017년 대대적인 5·18 희생자 시신 발굴 작업 당시 발견되지 않았다.

조 이사는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번에 시신이 발굴된 장소는 2017년 당시 파보지 않았던 장소이고 특별하게 암매장지라고 추정키 어려웠었던 측면도 있다”며 “이 부지는 교도소에서 관리해왔던 곳이라 5·18 흔적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던 여건도 있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수십여구의 유골들에 대해 “교도소 공동묘지였다는 특성상 5·18과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지만 조 이사는 “교도소는 5·18 관련해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은 곳으로 당시에도 3공수여단이 머물며 시민들의 희생이 많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 기록만 하더라도 27, 28명인데 실제 시신을 임시로 매장해 다시 발굴해 확인한 시신은 12구밖에 없어 현재 15, 16구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 묻혔는지 알 수 없기에 교도소 주변에 암매장 가능성이 있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 교도소와 광주시에서는 광주 교도소가 1912년 동구 동명동에서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했고 이장하면서 시신 40여 구가 무더기로 옮겨져 온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이사는 “그 추정 역시 바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고, 그렇다면 법무부에서 꾸준히 관리되었어야 할 시신들로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40여 구의 유골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점을 두고 조 이사는 <최강시사>에서 “유골이 묻혀 있던 상태를 보면 여러 가지 추정도 가능하다”며 “40여 구 의 유골이 한 군데 함께 집단으로 묻혀 있다는 점에서 1980년 희생된 분들이라면 1차 시신이 훼손되어서 옮겨졌을 가능성, 온전한 시신이라면 가로세로 1.3m 정도의 콘크리트, 좁은 공간에 40여 명을 암매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다”고 했다.

유골들은 현재 국과수 광주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진 상태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 가족들의 DNA를 광주시가 보관하고 있어 이를 대조해보면 시신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5·18 행방 불명자 가족인 정호화 씨는 MBC<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전남대학교 의학교실에 2000년 DNA 정보를 채취해 등록해뒀다”며 “공고를 통해 DNA 채취에 응한 행방불명자 가족의 120개의 DNA 정보가보관돼 있고 작년에 한 차례 더 진행해 150명 정도 DNA가 확보돼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정 씨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80년 5월 20일, 그의 아버지는 43살에 주유소에 석유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정 씨는 “국가기관에서 조사가 6개월 정도 걸리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발굴 작업은 비용과 인력이 들어가 개인이 적극적으로 발굴할 수 없다. 사유지도 있어서 광주 지자체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나서지 않는 이상 유골을 전부 발굴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5·18 당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행불자는 84명이지만 신고된 행불자는 450여 명 정도다. 실종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 조 이사는 <최강시사>에서 “1980년 5월 18일 자정 넘어 집단적인 폭력과 학살이 이뤄지고 20일 광주역 앞에서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다. 21일 금남로에서 낮 3시에 집단 발표가 자행됐고 21일부터 25일 사이에는 광주 교도소가 있던 광주시내에서 담양으로 나가는 진출입이 주요한 도로에서 무차별 총격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신 암매장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로 나중에 발굴된 사례들이 있는데 수많은 시민들에게 총살, 총격이 있었고 희생당한 분들 중에 온당하게 처리하지 않고 암매장 돼버린 사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5·18 책임자인 전두환, 노태우 씨에 대해 조 이사는 “노재헌 씨가 진정성을 담아서 사죄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만 노태우 씨가 아직 살아있으니 진심 어린 육성으로 희생자 가족은 물론이고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광주시민과 국민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을 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말했다.

병을 핑계로 재판을 회피하면서 골프와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된 전두환 씨에 대해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형사재판이 현재까지 총 9차례 공판이 진행됐고 내년 1월까지 넘기게 됐다”며 “전두환 변호인 측에서 증인을 신청하는 바람에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고 전두환 씨는 여러 행태를 보면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기에 재판부에서 아주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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