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허위조작정보 대응방안 모색을 위해 꾸린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전문가 회의'(이하 전문가 회의)가 6개월 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논의 결과를 내놨다.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을 정의하고, 책임 주체로 인터넷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 강조됐다. 하지만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판단과 규제 방향성 문제는 과제로 남았다.

전문가 회의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언'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앞서 방통위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대책 마련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난 6월 학계, 언론단체, 관련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꾸렸다.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전문가 회의'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언'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미디어스)

이 자리에서 전문가 회의는 지난 6개월간의 논의 내용을 발표했다. 발표에 나선 성욱제 KISDI 방송미디어연구실 연구위원은 우선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을 "허위사실임을 알면서 정치·경제적 이익 등을 얻을 목적으로 다른 정보이용자들이 사실로 오인하도록 생산·유포한 모든 정보"로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고의성과 목적성, 조작성 등을 고려해 허위조작정보의 개념과 범위를 설정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성 연구위원은 해당 개념이 '제언'을 위한 설정으로 법적 규제 등에 활용하기 위한 설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의는 법적 규제 등에 활용하기에 범위가 넓고,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려워 규제를 위해서라면 별도의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론중재법에 의거한 언론기사와 패러디·풍자는 허위조작정보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 회의의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언'의 기본원칙은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기본 권고 아래 제시됐다.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정파적 관점에서 동의하지 않는 모든 보도를 가리키는 등 정치적 공격 도구로 사용돼 오면서 언론을 포함한 뉴스 자체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 회의에 참여한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 팩트체크센터장은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정계 등에서 솔선해서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지 않기를 요청한다"며 "가짜뉴스라는 말이 함부로 쓰여 발생하는 폐해는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뜨린다. 사실을 다루는 언론도 가짜뉴스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언의 기본원칙은 ▲허위조작정보 문제에 대응하는 안전장치 마련 필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각별한 노력 필요 ▲정보 처리 절차의 투명성 확보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협력 필요 ▲단기적 대책보다는 중장기적 대책 필요 ▲중장기적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공개 의견수렴 절차 필요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적·장기적 검토 필요 등이다.

이 기본원칙에 따라 각 영역별 제언이 이뤄졌다. 플랫폼 사업자, 시민, 언론, 정부 등으로 이 중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됐다. 이에 대해 성 연구위원은 "허위조작정보가 뛰노는 운동장을 만든 분들의 책임이 크게 여겨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권고사항은 총 13가지다.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가짜계정 삭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광고수익 차단, 허위조작정보 판별을 위한 제3자 팩트체킹 기관과의 연계, 알고리즘 기준의 투명성 확립, AI 등을 활용한 자동화 팩트체킹 시스템 개발, 'KISO'(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로 대표되는 자율규제 시스템의 활성화 등이다.

시민 영역에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공론화 과정 적극 참여, 통합 논의를 위한 개방형 네트워크 결성 등이 요구됐다. 네트워크 결성과 관련해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통합 네트워크인 'SOMA'가 사례로 언급됐다. 'SOMA'는 유럽 각국에서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팩트체커, 기자, 연구자 등)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된 기구다.

언론 영역에는 투명성을 강조한 팩트체크 활성화, 허위조작정보 기사화를 자제하기 위한 전략적 침묵, 위조영상(Deep fake) 등을 파악하기 위한 허위조작정보 기술 교육 강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적극 협조 등이 요구됐다. 정부와 국회에는 국회차원의 초당파적 결의, 미디어 리터러시·팩트체킹 시스템 개발·허위조작정보 연구 등에 대한 지원 등이 권고됐다.

이 같은 결과에 토론자들 사이에서는 규제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판단,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책임 등의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고민수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정의를 보면 대단히 어렵다. 허위사실임을 알면서 추가적으로 주관적 요소로서 목적을 증명해야 한다"며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정의가 내려진 건 이해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했다는 것 치고는 정의 방향 자체가 어긋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권고를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검사들도 고의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이것을 플랫폼 사업자보고 하라고 하면 어떻게 증명을 하라는 것인가"라며 "실질적인 고려가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보호·비보호 영역을 논의해야 한다. 허위조작정보라도 그 중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차별이나 증오를 선동하는 극히 악의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들은 규제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전 주체의 노력은 과한 일반화"라고 말했다.

신익준 KISO 사무처장은 "2018년 3월부터 허위조작정보 관련 정책을 세우고 신고센터를 설립해 신고를 받아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성과는 별로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라며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고 재생산하는 분들이 '허위사실'이라는 걸 알고 그럴까. 아마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유포한 걸 누군가가 허위조작정보라고 판정하고 제재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신 사무처장은 "플랫폼에 가장 많은 임무를 부여했는데 유포자들은 가만히 두고 운동장 관리를 못했다고 제재하는 건가"라며 "혐오표현과 허위조작정보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인권위에서 발표한 혐오표현 인식조사를 보면,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으로는 정치인과 언론이 지목됐다. 어디가 먼저 반성해야할까"라고 꼬집었다.

전문가 회의에 참여한 김재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기술과 플랫폼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위조작정보는 생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할 것인데 플랫폼사업자에 대한 제언은 유통 방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며 "법률 정당성이 없는 상황에서 플랫폼 사업자가 이 제언을 따른다면 또다른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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