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가 주52시간제 관련 사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기사와 달리 어물쩍 넘어간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주52시간제를 다루면서 중소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꾸준히 노동 기획를 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는 18일 ‘한겨레의 최근 노동 보도’를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주 52시간제 관련 사설, 고 김용균씨 1주기·플랫폼 노동 관련 보도에 대한 평가가 진행됐다.

한겨레신문 11월 19일 <주 52시간, 언제까지 ‘땜질’ 대책으로 가야 하나> 사설

박영흠 위원은 지난달 19일 사설 <주 52시간, 언제까지 ‘땜질’ 대책으로 가야 하나>를 두고 “비판의 날을 세웠던 기사와 달리 어물쩍 넘어간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이 언급됐다. 박영흠 위원은 “(중소기업 경영상황이) 문제의 본질이라 하기 어렵다”면서 “중소기업 사주들이 주 52시간으로 인해 어려운 것도 현실이지만 직원들이 고통받고 있고 인식이 나쁜 것도 현실이다. 한겨레가 노동 이슈에서 한 발짝 후퇴한다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박영흠 위원은 “한겨레신문의 노동 담당 기자들이 갖는 부담이 클 것 같다. 잘해도 본전,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욕을 먹기 쉬운 부담스러운 자리”라면서 “한겨레가 제일 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비판한다면 다뤄야 할 노동 이슈들이 많은데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느낌이다. 한겨레는 한참 전에 플랫폼 노동자를 1면에서 다뤘는데, 최근 플랫폼 노동 문제가 화제가 되고 난 이후에는 소홀했다”고 밝혔다.

홍성수 위원장은 “한겨레21이 2009년 보도한 ‘노동OTL’ 기획은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만하다. 2018년 한겨레신문의 ‘노동orz’도 초단기 노동, 플랫폼 노동 등을 꼼꼼하게 잘 보도해서 좋았다”면서 “하지만 노동이라는 주제는 몇 년에 한 번 기획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며 그 안에서 취약한 계층을 계속 집중하고 부각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한겨레21 노동OTL 기사 (사진=한겨레21 홈페이지 캡쳐)

김제선 위원은 한겨레가 코레일 노동자 파업과 관련한 기획 기사를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제선 위원은 “코레일 파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등 정부의 문제를 언급한 좋은 보도도 있었지만 눈에 띄는 기획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면서 “한국 사회의 삶의 방식, 사회관계, 노동환경이 변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이야기가 부족하다. 어떤 부분이 정말 야만적인지 비판하는, 맥점을 짚는 보도가 아쉽다”고 밝혔다.

강혜란 위원은 한겨레가 기자들에게 노동 이슈 교육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혜란 위원은 “한겨레는 가사도우미 중계 플랫폼 ‘대리주부’가 1천 명을 직접 고용했다는 기사를 냈는데 아쉬웠다”면서 “한겨레는 규제 완화를 환영하는 내용의 기사와 플랫폼 노동자의 우려를 지적하는 기사를 냈다. (규제 완화 기사는) 기술 변화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한겨레의 실력에 비해서 단조로웠다”고 평가했다.

강혜란 위원은 “환경 변화에 따라 기자들이 노동 이슈를 어떻게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줬으면 한다”면서 “또 가사도우미가 주로 여성 노동과 관련된 문제라 ‘남성 노동 문제에 비해 고정관념을 갖고 쉽게 기술한 것이 아닐까’라고 점검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들은 한겨레21의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인터뷰 기사에 후한 점수를 줬다. 김미경 위원은 “‘~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독자가 느끼게 해줬다”고 평가했다. 홍성수 위원장은 “이슈가 터졌을 때 언론사가 얼마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왔느냐에 따라 기사의 질이 달라진다”면서 “김미숙 이사장 인터뷰는 인터뷰를 한 기자가 산업안전에 관해 공부하고 취재해왔던 역량이 합쳐져서 빛을 발했다”고 극찬했다.

홍성수 위원장은 최근 불거진 ‘검찰 출입기자단’ 논란을 두고 “느닷없이 검찰 출입기자가 한국에서 제일 나쁜 것처럼 됐는데 정말 특이한 현상이다. 한겨레를 포함해 언론들이 이 문제에 수세적으로 대응해 너무 당하고만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홍성수 위원장은 “한겨레는 예전부터 법조기자가 맹활약해 좋은 기사를 써왔다”면서 “그런 전통을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취급하는 행태에 좀 더 입체적인 반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영흠 위원은 “최근 법조기자 문제를 다룬 <MBC 피디수첩> 보도에 대해 법조기자단이 성명을 내고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한겨레는 동참을 안 한 것으로 안다. 언론이 글이나 말로 싸워야지 소송은 적절하지 않다. 한겨레가 동참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이다. 향후 한겨레의 노력과 성과를 알려 신뢰도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는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위원장 겸 시민편집인),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김미경 <한겨레:온> 편집위원,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박영흠 협성대 초빙교수, 김종구 한겨레 편집인, 황상철 한겨레 제1에디터, 임지선 한겨레 참여소통데스크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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