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애초 비례대표 100석을 건의한 선관위 개혁안에서 대폭 후퇴하여 75석에 연동률도 50%로 낮춘 선거법 개정안을 성안하고,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60석으로 낮추었다가 또 50석으로 줄이고, 이제는 연동의석 30석으로 캡을 씌운다는 안을 내놓고 합의를 강요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쏟아낸 비판이다. 18일 민주당과 공조 논의를 이어가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안신당(가칭) 등 야 '3+1' 당은 '30석 캡 적용' 수용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 단일 초안을 도출했지만, 민주당이 석패율제 도입을 수용할 수 없다며 역제안 해 협상은 또다시 교착 상태로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군소야당 측에서 민주당을 향한 비판이 이는 이유는 수차례 민주당의 입장이 번복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017년 19대 대선공약집에 "소외받는 국민이 없도록 공직선거제도를 개편하겠다"며 국회 구성의 비례성 강화와 지역편중 완화를 위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명시했다.

민주당의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공약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권고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8월 의원총회를 열어 이를 당론으로 정했다. 당시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대부분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사실상 당론"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이던 시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꾸준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월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현행 선거제도는 어느 정당이 전 지역에서 49%를 득표해도 한 명도 당선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49%의 국민이 단 한 명의 대표도 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어느 정당이 어느 권역에서 20% 득표를 얻을 경우, 그 권역에 배정된 의석수의 20%에 해당하는 대표를 낼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그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선거제도는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라고 썼다.

그해 10월 18대 대선후보로 나선 문 대통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정치쇄신안을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정치 기득권의 핵심은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에 있고, 이를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깨야 한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2015년 4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엔 국회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확대하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그해 선관위 권고안에 한발 더 나아간 주장이었다. 국회 정개특위 가동 시점과 맞물려 여론을 의식했던 민주당은 '문 대표 발언은 당론이 아닌 사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8월이 되자 문 대통령은 의원정수 확대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고 호소했고, 의원총회 후 "사실상 당론"으로 정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해 가진 비공개 환담 자리에서도 "선관위 안이 각 당의 당리당략을 떠나서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을 기본으로 논의해나가면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2월에는 "2012년 대선 때도, 지난번 대선 때도, 제가 당 대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선관위가 관련 안을 제시해줘서 우리당하고 정의당이 함께 노력했던 바도 있었다"며 "선관위 안을 기본으로 해서 여야 합의를 본다면 저는 얼마든지 대통령으로서 함께 의지를 실어서 지지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올 한 해 동안 이어진 선거법 논의 과정은 민주당의 입장변화 속에 후퇴만을 거듭했다. 올해 초까지 100% 연동률을 토대로 논의되던 선거법 개정안은 민주당 반대로 연동률을 50%로 낮추는 안으로 합의를 이루게 됐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4월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에 50% 연동률을 적용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오르고 총선이 다가오자 민주당에서는 '240+60', '250+50'안이 제시됐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50석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한해 준연동률을 적용하는 소위 '캡' 적용 안이 나왔다. 패스트트랙 합의에 지속적으로 담겨온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 민주당은 돌연 '중진 구제용', '비례대표제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을 펴며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석패율제 도입에 민주당이 반대하는 진짜 속내는 수도권 등 접전지역에서 군소정당 출마자에게 표를 뺏길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에 '누더기', '반에 반쪽' 수식어가 붙으며 민주당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검찰개혁 법안을 선처리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4+1' 협의체 내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19일 오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이 원하는 것부터 먼저 처리하자. 우선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차례차례 처리해 나가자"며 "민생과 검찰개혁 먼저 마무리 짓는 것도 열어놓고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4+1' 협의체 내 이견이 적고 여론이 뒷받침되는 검찰개혁 법안의 선처리를 카드로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을 우선처리 한다는 패스트트랙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자는 제안이어서 '4+1' 내 야당에서 곧장 반발이 일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웃기는 얘기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이 여전히 당익을 앞세운다면 국민들은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혁, 검찰제도 개혁의 의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