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삼성이 '노조파괴 공작'으로 재판에서 임직원 26명이 유죄 선고를 받자 사과문을 내고 사실상 81년간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 원칙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다수 주요 언론은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과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비판했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노총 등 강성노조 확산 우려가 있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 원칙을 세운 적 없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18일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는 공식 사과문을 냈다. 17일 법원이 삼성그룹 노조 와해 사건 관련 전·현직 임직원 32명 중 '그룹 2인자'로 불리는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의장, 강경훈 부사장 등을 포함한 26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직후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한지 6년 만의 일이다.

이에 대다수 주요 언론은 삼성을 비판했지만 조선·동아일보의 보도내용은 남달랐다.

조선일보는 <삼성, 81년 無노조 정책 포기… 양대 노총 격전장 되나> 기사에서 "삼성이 무노조 원칙을 포기하면서 계열사별로 우후죽순처럼 노조 설립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이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강성 양대노총의 '격전장'이 돼 경영 간섭이 심해질 것이라는 재계 반응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강성 노조가 설립된다면 현대차 노조처럼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매년 사측과 지루한 연봉 협상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한국 대표 기업까지 노조 리스크에 완전히 노출된 것"이라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12월 19일 조선·동아일보 보도 및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삼성에도 민노총 들어서면 세계 1등 유지되겠나>에서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조 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무력화했다면 경영 활동과 거리가 먼 노동 탄압이자 불법"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 합리성 대신 투쟁과 폭력이 지배하는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노조 있는 삼성'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노조 비난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민노총이 주도하는 대기업 노조의 강경 일변도 노선은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며 "회사의 경영상 결정을 뒤집겠다며 주총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가 하면, 이득을 더 챙기겠다며 건설 현장을 마비시키는 일이 전국 노동 현장에서 거의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후진적 노조 문화는 문재인 정부의 편향적 친노동 기조에 편승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세계 13위인데 노사 협력 부문은 141국 중 130위"라며 "삼성마저 이런 후진적인 노조에 휘둘리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강조했다. 노사협력이 잘 되지 않는 원인에 '후진적 노조'가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삼성, 사회가치 변화 맞춰 노사관계 새틀> 기사에서 '무노조 경영'이 아닌 '비노조 경영'이라며 삼성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한 바는 없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938년 창립 이래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더 큰 보상을 통해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는 '비노조 경영'을 고수했다"며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회사에 노동조합을 둬선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삼성 내부에서도 '창업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중론"이라고 했다. 다만 200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비노조 정책' 설명을 싣고, '노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는 것이다.

이어 동아일보는 "지난해 포스코에 민노총 산하 노조가 결성된 데 이어 삼성전자에도 한국노총 지부가 생겨 사실상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모두 상급단체 소속 노조가 들어선 상태"라며 "앞으로 기업마다 강성노조 활동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임금 및 단체 협약 관련 갈등이 생기거나 기업 경영 현안과 상관없이 상급단체와 발을 맞추기 위한 노조의 활동이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썼다.

반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은 삼성의 시대착오적 노동관을 비판하며 노사관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주문했다.

한겨레는 사설 <잇단 유죄 판결 삼성, "죄송하다"로 끝낼 일 아니다>에서 삼성의 사과문에 대해 "유럽에서 노동조합을 합법화한 게 100년도 훨씬 지난 일인데, 글로벌 기업 삼성이 이제야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을 되돌아보겠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라며 "안이하기 짝이 없고,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과문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겨레는 "삼성은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당장 중단하고 '노조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마땅하다"며 "파괴 공작의 대상이었던 노조원들에게 사과하고, 노조를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궁극적으로는 회사에도 유익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삼성의 ‘비노조 폐기’ 결정, 노사관계도 초일류 돼야>에서 "삼성이 50년 넘도록 표방해 온 이른바 ‘무노조 경영 방침’의 허구와 불법성은 그동안 숱한 도전을 받아 왔다. 세계 초일류기업을 자처했지만, 노사관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있는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비노조 정책을 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신문은 삼성 사과문에 대해 "단순한 말에 그쳐선 안 되고 삼성그룹 차원의 후속 조치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이번 판결이 과거 반인권, 불법 행위에 대한 성찰과 함께 노조와 상생·공존의 새로운 경영철학 및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노조 와해' 삼성, 노조를 '파트너'로 존중하는 인식 가져야>에서 "1심 판결이지만 법원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과 노조 탄압 시도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면서 "헌법이 보장한 '노조 할 권리'를 부정한다는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이 임직원의 권익과 복리 증진에 대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라고 주장해 온 만큼 이 같은 삼성의 사과문은 삼성이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에 맞춰 ‘무노조 경영’ 노선에서 벗어나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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