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 일인 데 응급실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밤 늦게 아랫배가 너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부산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인 동생에게 전화로 소위 문진을 해보니 영락없는 급성 맹장염이었다. 동생은 가까운 응급실로 가서 맹장염 수술을 빨리 하라고 권하였다.

죽을 정도는 아니어서 아침 일찍 직접 운전해서 양재대로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서 증상을 얘기하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물론 ‘동생이 의사인데 문진해보니 맹장염이라고 하더라’는 얘기까지 빠트리지 않았었다.

사람 잡을 응급실과 숭례문 참사

▲ 경향신문 2월14일자 1면.
그때부터 거의 죽음까지 이를 뻔한 고행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아침 9시부터 의사들이 들락날락하며 나를 보거나 만진 의사가 7-8명, ‘맹장염과는 통증 부위가 약간 다른 것 같다’거나 하며 급기야 생전 처음인 대장 내시경까지 해야 했다. 다른 의사 기다리는 동안 응급실 침대가 없어 내 차 의자에 좀 누워있기도 했으며, 끝내 열이 39도 이상으로 올라 실신하기까지 했다.

이러기를 오후 5시까지 무려 8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 병원 앰블런스 차량이 나를 실어 인근의 교통사고 전문이라고 하는 중규모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하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그 병원은 당시 의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인지 응급실에는 인턴 과정 의사들만 있었고 레지던트 의사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들의 말로는 응급실 환자 중 상당수는 엄살이 있는 데, 잘못 판단해서 엄살인 환자를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가 잘못이 드러나면 고참 의사에게 ‘조인트’까지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있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만지고 검사하고 하다가 한나절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 사이 맹장염은 복막염으로 발전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되었으나 그날이 토요일이라 그 큰 병원에서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 부랴부랴 나를 앰블런스에 싣고 항상 수술할 의사가 있는 소위 교통사고 전문병원으로 가서 수술받게 한 것이었다.

마취가 깬 뒤 수술의사는 나에게 ‘고름이 심해 15cm를 절개하고 약 500 cc를 닦아 내었으니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약 1달 후 수술 부위 옆으로 고름이 전이되어 재수술을 했고, 나는 2달 가까이 입원 후 퇴원할 수 있었다.

국민들이 모두 지켜본 가운데 전소된 숭례문

숭례문을 홀랑 태워먹었다. 그것도 5시간 동안이나 온 국민들이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장면에서부터 전소되어 완전히 무너지는 장면까지를 국민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 한겨레 2월14일자 1면.
그 자리에는 일부의 시차가 있었겠지만 문화재 관리의 전문가, 한옥의 대목수도 와있었고 물을 계속 들이붓게 한 소방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5시간이나 물을 들이붓고도 불길을 잡지 못했고 숭례문은 무너져 내렸다. 전문가가 넘치는 우리 사회,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였어도 눈앞의 불길을 잡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지, 물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쏘아 진압해야 하는 지, 위에서 물을 계속 부어도 불길이 진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와지붕을 일부 뜯어내고 속으로 물을 부어야 하는 지, 그 누구도 어느 전문가도 전체의 상황을 고려한 통합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속수무책 시간만 보냈다. 어떤 이는 괜히 지붕을 뜯고 진화했다가 나중에 ‘왜 그걸 꼭 뜯고 진화했어야 했나?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진화하는 방법을 찾았어야지’ 하는 호통만 맞지 않을까 염려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에도 우리는 몇시간 동안 서해상으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기름을 망연자실 쳐다보기만 했어야 했다. 그 많은 방재전문가, 선박 전문가, 해난 사고 전문가, 해양 경찰, 해양 수산부 공무원, 교수 박사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고의 어이없음은 차치하고 이미 터져 쏟아져 나오는 기름을 몇시간이고 방치해 피해를 키워야만 했을까? 그나마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대로 된 응급조치라고 할 만한 것을 하나도 할 수 없었을까? 당시 사고 현장 상황을 장악하여 적절한 판단을 해야 했던 지휘자는 아무도 없었을까?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했고 그래서 무엇을 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거나 제대로 된 부분은 어떤 것이었다거나 하는 정도는 공유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80년대 학생시절 남미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론을 많은 학생들이 읽었었다. 지금은 지난 운동권의 낡은 이론으로 치부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가 강조했던 이론과 실천의 통합, 행동과 사고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뜻하는 praxis 론에 귀를 기울였었다.

말 그대로 ‘생각하는 행위’, 현장성과 전문성을 통합한 판단력과 그에 맞는 실행력이 있었다면, 뿔뿔이 분산되어있는 부분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합할 수만 있었다면 몇시간 쳐다만 보다가 숭례문을 주저앉히지도 온 서해를 기름으로 덮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경험과 통합적인 판단력을 갖춘 유능한 의사가 있어야 할 곳 중 응급실이 빠질 수는 없다. 현장을 경시해서인지 힘든 일을 기피해서인지, 응급실에 제일 경험이 적고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 부적절한 신참 의사들만 배치하는 병원에 환자들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

시민의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는 행정 현장, 복지 환경 노동 등 시민의 삶의 질에 직결된 현장 역시 다르지 않다. 전문가가 넘치는 세상, 눈앞의 불조차 못 끄고 쏟아져 나오는 기름을 막지도 못하는 답답한 현실에 우리 시민의 멍든 삶이 맡겨져 있다.

대학 때 총기독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서울YMCA 청년회원 활동을 시작해 87년 간사를 거쳐 올해 7월 시민운동에서만 20년이 지났다. 소비자보호, 법률구조, 사법개혁, 방송개혁, 공정거래 등 시민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했다. 시민의 것을 빌려 쓰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피해당하는 시민 삶의 현장을 살피겠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민, 소비자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알려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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