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K리그 4라운드에서 FC 서울이 기분좋은 첫 승을 챙기며 침체됐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데얀, 몰리나, 제파로프 등 외국인 공격수들의 활약이 빛났고, 이들과 중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신예 문기한의 플레이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단 한 선수는 팀의 시즌 첫 승에도 불구하고 마냥 크게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후반 36분에 투입됐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4분 만에 수비수 김동진과 교체돼 나가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벤치에 들어올 때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데얀이 세 번째 쐐기 골을 터트렸을 때도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의 미래로 꼽혔다 최근 유달리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선수, 이승렬이 그랬습니다.

올림픽대표 평가전을 통해 부활의 날갯짓을 펴는가 했던 이승렬의 하락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공격 자원들에 밀려 올 시즌 초반 벤치 멤버로 출발한 이승렬은 새로 부임한 황보관 감독의 눈에 띄지 못하며 그야말로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북과의 경기가 열린 이날 역시 황보관 감독은 "이승렬이 기대한 만큼 제대로 하지 못해 경기에 투입시켰다 뺐다. 선수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면서 이승렬의 기대에 못 미친 활약상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이후부터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대표팀 발탁 실패 등으로 하락세를 맞이했던 이승렬이 대표팀뿐 아니라 이렇게 소속팀에서도 좀처럼 전환점을 찾지 못한 채 하락세를 거듭하며 프로 선수로서 최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 이승렬 ⓒ연합뉴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이승렬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습니다. 허정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어 김보경과 함께 남아공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고,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막판 5분 여를 뛰며 당당히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결정력도 좋고,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 센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경험만 좀 더 키우면 충분히 한국 축구 공격을 이끌 재목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오히려 더 좋아져야 할 이승렬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며 좀처럼 화려한 날갯짓을 펴지 못했습니다. 강점을 드러내야 할 부분들이 잘 드러나지 않고, 기량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당장 각급 대표팀 감독들로부터 큰 호통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의욕이 없어 보인다"면서 이승렬을 강하게 질책했고, 언젠가부터 그를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하는 충격 요법을 가했습니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역시 광저우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 이승렬을 제외하는 등 큰 대회마다 유독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FC 서울의 우승에 공을 세우고 '선배' 정조국의 유럽 진출로 올해 그나마 많은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난해보다 폼이 떨어지면서 황보관 신임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이따금씩 얻은 출전 기회조차 이승렬은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결국 시즌 첫 4경기 만에 교체 투입됐다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다시 교체 당하는 최악의 수모를 겪기까지 했습니다. 직전에 올림픽대표 경기를 통해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이번 수모로 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황보관 감독이 이승렬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한다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FC 서울 입장에서는 다양한 공격 자원을 키워야 하는 차원에서 이승렬의 부활이 어느 정도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랬기에 이승렬을 좀 더 믿고 지켜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스스로 정면 돌파하는 이승렬의 의지가 좀 더 강력하게 나타나야 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극복하고 커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한 단계 성숙해진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고 더 큰 선수로서의 면모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대표에 입성하면서 보여준 각오만큼이나 꾸준하게 이를 유지하며 변화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일단은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승렬 입장에서는 분위기 전환이 절실합니다. 그 답은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는 것,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득점을 뽑아내는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며 조급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터득하고, 주변에서 잘 도와주는 것만이 그의 회복을 어쩌면 좀 더 빠르게 하고 몇 단계 성숙해진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환점을 잘 살려 꾸준하게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시 장점을 회복하고 공격수로서, 또 달라진 팀 분위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준다면 황보관 감독의 눈에도 들고, 대표팀에도 당연히 기회가 올 것입니다.

보다 다양한 공격자원이 필요한 만큼 FC 서울, 그리고 올림픽이나 성인대표팀 모두 이승렬의 부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환점을 찾고 다시 떠오르는 신예 공격 자원, 이승렬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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