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지난달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시민방송RTV ‘백년전쟁’ 법정제재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2013년 백년전쟁 법정제재 처분에는 ‘정치심의’라는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대법원 판결 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의 필요성을 확인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제기됐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백년전쟁에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로 사적 권력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이며 미국에 굴종하고 한국 경제성장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챘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방송 RTV는 위성방송 등을 통해 2013년 1∼3월 두 편을 모두 55차례 방영했다.

(사진=시민방송 RTV)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3년 7월 백년전쟁을 방송한 RTV에 중징계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제재를 내렸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의견진술 기회를 박탈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발언을 더 해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RTV 측은 제재에 불복하고 방통위에 ‘제재조치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방통심의위가 내린 제재를 실행 명령하는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이기 때문에 방통위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1·2심은 제재가 적법하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이같은 판결을 깨고 제재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백년전쟁은 공적 인물과 공적 관심사를 반영해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사자의 명예존중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1일 <대법원의 백년전쟁 판결, 심의제도 재검토의 계기로 삼아야> 논평에서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필요성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이번 판결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균형성의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한 것”이라면서 “소수의견의 대법관들 백년전쟁이 ‘양적 균형’을 잃은 것을 중대한 제재 사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균형성이란 관련 당사자나 방송 대상의 사회적 영향력, 사안의 속성, 프로그램의 성격 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평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명시했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이는 ‘기계적‧양적 균형’으로 방송의 균형성을 판단하는 심의가 얼마나 부적절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서 “독재 정권의 개입으로 편파 왜곡 보도가 난무하던 시절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이라도 맞추라 했던 요구가 반영된 공정성 개념을 지금 민주화된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백년전쟁 판결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현재와 같은 공정성 심의 방식이 적절한 것인지 묻는 성찰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김재형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행정기관이 방송심의제도를 통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강제하는 것은 방송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보충의견을 남겼다. 이는 방송 공정성 심의가 적절한지 따져보기에 앞서 심의를 하는 기관이 일단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함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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