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52시간제 시행에 돌입하는 300인 미만, 50인 이상 중소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사유를 확대하기로 했다. 노동계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주 52시간제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이재갑 장관은 "50~299인 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며 "계도기간은 단순히 처벌이나 단속이 유예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을 지키기 위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기업에 준비시간을 조금 더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52시간제의 단계적 시행으로 대기업과 비교해 1년 6개월의 시행 유예가 이뤄졌던 중소기업에 1년 더 준비기간이 부여된 것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주52시간제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이재갑 장관은 "현행 제도하에서 법을 준수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보완대책으로 기존 재해·재난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노동부 인가를 통해 연장노동이 가능했던 특별연장근로는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이 대폭 증가한 경우 ▲시설 고장 등 돌발 상황에 긴급 대처가 필요한 경우 ▲국가경쟁력·국민경제와 밀접한 연구개발 업무 등으로 확대된다.

앞서 지난달 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의 보완책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하고, 국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유연근로제 입법이 지연될 경우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자체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노동부 장관 인가와 노동자 동의를 얻어 근로기준법이 정한 1주 12시간 연장근로를 초과 연장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날 정부발표로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노사정 대화에 임해 특별연장근로 단위기간에 합의했던 한국노총까지 강력반발에 나섰다. 정부가 '입법에 따른 노동시간 규제 원칙'을 훼손해 시행 규칙만으로 노동시간 규제를 되돌리고 '업무량 급증', '연구개발' 등 경영상의 사유에 따른 특별연장근로를 용인해 주52시간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용자 편의에 따라 노동시간을 임의로 연장하거나, 원·하청 구조에서 원청이 갑자기 물량을 늘리는 경우 등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시간 제한 제도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사진=미디어스)

민주노총은 "소 귀에 경 읽기를 그만하겠다"며 이재갑 장관의 퇴진을 촉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노동시간 제한 제도 개악 규탄'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제 개악이 국회벽을 넘지 못하자 이제는 문재인 정부 노동부가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고 확대하는 길을 열어 제끼고 있다"며 "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할 정부부처다. 이를 역행하고 도리어 사용자 편에서 장시간 노동의 길을 열어준다면 노동부장관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기자회견문에서 "이제 우리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노동시간 단축 실태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통계나, 국제 노동기준 상식에 대한 소귀에 경 읽기를 그만하겠다"며 "정부 행동에 대한 법적,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 반노동·반헌법 발상을 실행에 옮긴 이재갑 장관은 퇴진하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기자회견문에서 "오늘 발표는 ‘저녁 있는 삶’을 원했던 우리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산산조각 내는 명백한 ‘노동시간 단축 포기선언’"이라며 "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왜곡하고 있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그 즉시,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 준비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설령 개정 시행규칙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개별 특별연장근로의 인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또한 불사할 것임을 밝힌다"고 경고했다.

국회 안에서도 이번 정부발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 노동본부(본부장 김영훈)는 정부의 주52시간제 보완대책과 관련해 12일 이재갑 장관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방침이다. 노동부가 직무를 유기해 법집행을 임의로 유예하고,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는 직권남용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노동포기 정책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는 보수정권들이 손쉽게 해왔던 '노동잔혹사'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번 정부 방침은 더 이상 '노동존중정부'라는 말을 쓰기 민망한 수준이다. 52시간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에 대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막아내고 정부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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