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 소년탐정 김전일 등등 추리 장르는 '마니아'적인 일군의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셜록이 영드 2부작 <셜록>으로 돌아왔을 때 추리 마니아들이 환호한 건 스타일리시한 구성만이 아니라, 과거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그 '신선한 퍼즐'에 있었다.

12월 4일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은 모던한 아가사 크리스티라고 하면 어울릴까? 성과도 같은 외딴 저택에 사는 당대 최고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의 죽음과 용의선 상에 오른 가족들은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스러웠던 <쥐덫>,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삐뚤어진 집> 등 저택을 배경으로 했던 작품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심지어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돈 존슨, <할로윈>의 제이미 리 커티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아나 디 아르마스, <그것>의 제이든 마텔, <올 더 머니>의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의 화려한 출연진이라면 더더욱 그 누가 범인일지 예측불가다.

모두에게 살인의 이유가 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이미지

아가사 크리스티 스스로 자신의 10대 걸작 중 하나라 칭한 <삐뚤어진 집>은 음산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대부호의 죽음. 그렇게 <삐뚤어진 집>처럼 <나이브스 아웃> 역시 곳곳에 마치 공포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인형과 그림과 장식품들이 즐비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저택의 거실에 자리한, 둥근 바퀴 모양으로 꽂혀 그 자리에서 빼어 들면 바로 무기가 될 것 같은 칼들이다.

그곳에 1년에 2권씩 평생 동안 미스터리 스릴러를 써온, 85세 노익장 소설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 분)과 그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스타일즈 저택>에서 용의자 모두가 죽은 노부인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해 왔듯이, 대가의 자식들답게 저마다 제 앞가림을 하고 산다지만 그 허울 좋은 자녀들의 한 껍데기를 끄집어 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버지 돈으로 부동산 사업을 한다지만 바람피우는 남편 리처드(돈 존슨 분). 돈 한번 번 적이 없이 고급 차를 몰며 세월을 보내는 아들 랜섬(크리스 에반스 분)을 둔 큰딸. 명색이 아버지 책을 내는 출판사 사장이라지만 아버지 작품 TV 각색사업의 권한조차 없는 둘째 아들 월트(마이클 새넌 분). 말이 좋아 ‘트렌드세터'지 남편이 죽은 이후 시아버지가 돈을 대준 딸의 학비마저 유용하여 자신의 사치스러운 삶을 투자하는 며느리.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손주, 손녀가 있다.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은 85세 생일을 맞이하여 중대 결심을 한다. 자신이 평생 글을 써서 모은 돈으로 뒷바라지한 것이 외려 자식들의 앞길을 망쳐온 것이 아닐까란 후회를 한 그는 생일을 기점으로 더는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결심은 실행되지 않았다. 아니 실행될 수 없었다. 생일 다음 날 그는 칼로 목을 그은 채 발견되었고, 느닷없이 그 누군가의 촉탁으로 경찰과 함께 등장한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리에그 분)은 가족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타살'의 혐의를 좀처럼 거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할란의 죽음을 두고 그에게 촉탁한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의심스럽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늘에서 비껴선 반전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이미지

가족들은 슬퍼하면서도 안도한다. 할란이 죽은 덕분에 사위는 아내 몰래 바람피우는 걸 들킬 염려가 없어졌고, 하룻밤 사이에 출판사에서 쫓겨날 뻔했던 둘째 아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당연히 할란의 어마어마한 유산이 자기들 몫이 되리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류층 가족의 부도덕한 모습은 역시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삐뚤어진 집>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전적 설정에서 한 발씩 비껴서며 새로운 추리의 퍼즐을 만들어간다. 편지 한 장으로 저택에 등장한 탐정 브누아 블랑이 그러하고, 그와 함께 '왓슨' 역할을 하게 된, 할란의 전담 간호사 마르타(아나 드 아르마스 분)의 캐릭터가 추리 장르가 가진 전형성의 벽을 허문다.

그리고 할란의 생전, 사후의 시간을 오가며 사건을 드러내 보이던 영화는 이민자 간호사인 마르타와 할란 사이의 '비밀'이 드러나며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추리 장르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거짓말을 하면 토하는, 하지만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마르타와 그런 마르타의 비밀을 알게 된 랜섬(크리스 에반스 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 거짓말탐지기‘ 증상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착한 사람이라는 심성에 대한 믿음인지 마르타를 자신의 수사 보조로 함께하고자 하는 브누아 블랑의 엇갈리는 관계가 <나이브스 아웃>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장르였던 영화는 문득 셜록 홈즈였다가, 마르타의 시점에서 전개되면서 ’서스펜스 스릴러‘가 되기도 한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이미지

드디어 가족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할란의 유언이 발표되고, 오로지 할란에 기대어 살아왔던 가족들의 진짜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시에, 말끝마다 '가족'이라 했던 이민자 마르타에 대한 이중적인 속내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거기엔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란마저도 죽일 수 있는 부도덕하면서도 이기적인 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가운데, 뒤에 앉아 지켜보는 듯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도넛의 뚫린 구멍처럼 의문스러웠던 할란 죽음을 추적하던 브누아 블랑은 드디어 진실에 다가선다. 범인이 예리하게 겨눴던 할란의 목숨. 하지만 계획된 범죄가 뜻밖의 '오류'를 통해 전혀 다른 죽음의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 즉 영화 제목인 '나이브스 아웃'이 곧 스포였던 결말. 그 과정에서 영화는 뜻밖에도 '권선징악'의 교훈으로 마무리된다. 마치 착한 사람은 자다가도 떡을 얻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기는커녕 두 손 가득 횡재한다는 동화 같은, 하지만 할란네 가족 입장에서는 '잔혹동화'의 결말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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