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말해서 <베니싱>은 포스터를 전적으로 믿으셔도 좋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는 분도 영화를 직접 보시면 아마 수긍하시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극장으로 향하라며 부추기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다분히도 아니라 대놓고 묵시록적인 영화입니다. 이 말은 곧 종교적이라는 것과 이음동의어라는 것쯤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요컨대 <베니싱>은 실의와 비탄에 빠진 자들에게 "모든 것이 다 신의 뜻이다"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의 습성을 쏙 닮았습니다. 그만큼 무책임하다는 얘기입니다.
이것만 보면 제법 흥미진진합니다. 예고편에 이끌려 <베니싱>을 본다 해도 전혀 무리는 아니에요. 그러나 초반부터 논리와 설득력을 상실한, 아니 아예 관심도 없는 듯이 전개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안드로메다가 간절해집니다. 여기서 딱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분명 <베니싱>의 세상은 전기가 완전히 나가서 밤이 되면 암흑천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및 휴대전화의 배터리까지 모두 쓸 수 없는 상태인데, 희한하게도 손전등에 필요한 건전지만은 멀쩡합니다. 혹시 화학성분을 가려서 불빛을 앗아가는 걸까요? (전공자 여러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대충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극의 전반을 수놓고 있으니 갈수록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베니싱>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억지스런 설정을 군데군데 마음대로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지막까지 '종교적'이라는 것을 면죄부로 내세우면서 깊은 고민 없이 얼버무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굳이 영화를 제작할 결심을 했으니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죠. 적어도 <해프닝>도 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세 가지의 미스터리 중 마지막 하나가 남았죠? <베니싱>은 북미에서 지난 2월 18일에 개봉했습니다. 헌데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박스 오피스 소식을 전해드렸음에도 <베니싱>에 대한 기억은 일절 없더군요. 왜 그런지 찾아봤더니 4주 동안 10개에도 못 미치는 극장에서 상영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흥행수입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메이저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초라했던 이유가 뭘까요? 브래드 앤더슨이 연출하고 헤이든 크리스텐슨, 탠디 뉴튼, 존 레귀자모라는 잘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말입니다. 이미 해답이 나온 것도 같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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