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국 축구에 유독 포지션 파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공격수가 수비수로, 수비수가 공격수로 뛰는 극단적인 포지션 파괴를 비롯해 측면을 주로 뛰는 선수가 중앙으로 이동해 플레이를 펼치는 등 다양한 전술적인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정한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잘 활용해 상대의 허를 찌르고 궁극적으로는 팀의 변화를 꾀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포지션 파괴인데요. 거스 히딩크 감독을 통해 등장한 '멀티 플레이어' 개념이 2011년 들어 '포지션 파괴'라는 이름으로 다시 크게 주목받으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포지션 파괴가 축구를 보는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으며, 전술, 스타일 등 한국 축구를 변화시키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포지션 파괴가 각 팀의 틀을 바꾸고 전체적인 판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과연 어느 팀이 이러한 변화를 잘 활용하고 좋은 성과도 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포지션 파괴로 가장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김정우 ⓒ연합뉴스
최근 포지션 파괴를 통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는 바로 김정우입니다. 지난해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나섰던 김정우는 올해 상주 상무에 이수철 감독이 부임한 이후 공격수로서 공격 본능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K리그 3경기에서 4골을 넣는 데 성공, 득점 선두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김정우의 공격 본능 덕분에 상주는 2년 만에 K리그 선두에 올라섰고, 김정우 역시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K리그의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포지션 파괴, 멀티플레이어 개념이 다시 한 번 새롭게 주목받았습니다.

이러한 포지션 파괴는 최근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에서 전술 구성의 큰 핵심 요소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미드필더로 주로 나섰던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는가 하면 공격수인 조영철이 측면수비수로, 중앙수비수인 김영권이 역시 측면수비수로 온두라스전에 출전한 바 있습니다. 또 장신 타깃형 공격수인 김신욱이 수비수로 대구 FC와의 연습경기에 출전하는 실험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고 역량을 갖춘 선수들의 특장점을 활용해 팀 전력의 극대화를 이루는 효과를 노렸는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포지션 파괴가 일부 자원의 공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면도 있지만 이러한 실험을 통해 경고, 퇴장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시 안정적으로 경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습니다.

K리그에서의 포지션 파괴 실험 역시 여러 팀에서 부각돼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팀들이 이전부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만한 선수를 몇몇 보유해 경기에 투입시킨 적이 있었지만 크게 재미를 봤던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아직 3라운드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눈에 띄는 포지션 파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측면 미드필더가 수비수 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포지션 변화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모험을 감행한 경우들이 유독 많이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K리그에서 포지션 파괴로 가장 큰 성공을 본 팀은 역시 앞서 언급한 김정우가 속해 있는 상주 상무였습니다. 상주는 공격수로 변신한 김정우, 측면 수비수에서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시킨 최효진 등 포지션 파괴 전략 덕분에 활동감 넘치고 공격적인 팀으로 탈바꿈하며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기본적인 역량과 지도자의 화끈한 실험이 조화를 이루면서 초반 돌풍을 달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눈에 띄는 각 팀들의 포지션 파괴가 있었습니다. 수원 삼성은 수비수인 곽희주를 공격수로, FC 서울은 공격수인 방승환을 중앙 수비수로 출전시킨 바 있습니다. 그렇게 큰 재미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새 시즌을 맞이해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도 하고, 색다른 포지션을 바라보는 팬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게 보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물론 포지션 파괴가 '양날의 검'이기는 합니다. 잘만 활용한다면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것만 못한 게 바로 포지션 파괴입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들이 양산되고, 그런 만큼 보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 더 많아질 수 있는 장점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포지션 파괴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큰 화두이자 색다른 볼거리로 전면에 등장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포지션 파괴로 색다른 축구를 구사하며 크게 떠오르는 팀, 그리고 선수는 누가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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