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심 있는 보수는 진보에게도 소중한 도덕적 귀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고려대 당국은 출교생들에게 사실상 무자비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과연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며 어떤 가치를 학습할 수 있는가? 고대 당국자들이여, 제자들 앞에서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가 지난 1월17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가운데 일부다. 그런데(?) 박 교수의 이 칼럼은 마치 예언을 한 것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복학할 것으로 예상했던 고려대 출교생들에게 고려대가 13일 다시 퇴학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한겨레 1월17일자 30면.
출교생들의 복학 공언해 왔던 이기수 총장 “결정 사항 존중한다”

오늘자(1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출교 학생들을 퇴학시키기로 결론을 내렸고 △상벌위원회 소속 교수들 사이에서는 ‘출교 조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출교생들은 고려대 본관 앞에 652일 만에 철거했던 천막을 다시 치고 14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 2월14일자 10면.
고려대 교수들의 이 같은 결정이 새삼 놀라운 건 아니다. 애초 출교조치라는 비교육적인 결정을 내리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좀 어이가 없는 것은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다. 이 총장은 지난달 중순 총장으로 선출된 직후 ‘천막 농성을 풀 경우 복학을 시켜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이는 많은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가 됐다. 자신의 의지를 직접 대외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출교생들을 자신의 취임식에도 초청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 총장이 고려대 상벌위원회의 퇴학 결정에 “상벌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복학 공언’ 발언은 무엇이란 말인가. ‘퇴학은 재입학이 가능해 출교 조처보다 한단계 완화된 처분’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말일까. 퇴학에 따른 재입학과 복학이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이기수 총장 ‘발언’ 전하던 언론들 …· 퇴학 조치 결정은 침묵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에 반대한 학생 7명이 점거농성 과정에서 보직교수들을 ‘감금’한 것에 대해 고려대가 출교라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불거진 이번 사태는 법원이 출교생들이 낸 출교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사태해결의 희망이 보였다. 지난해 법원은 출교 처분의 효력을 중지하라고 결정했고 특히 올해 이기수 총장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지난 2006년 4월 시작된 고려대 출교생 사태가 학생들의 복학으로 해결될 것으로 예상됐다.

▲ 국민일보 1월23일자 9면.
하지만 박노자 교수의 예언(?)대로 “지금의 고려대 당국은 출교생들에게 사실상 무자비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엄밀히 말해 출교조치에 이어 퇴학 처분이라는 것으로 다시 한번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오늘자(14일) 아침신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 이 소식을 전한 곳은 한겨레 정도였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대다수 언론 또한 고려대 못지 않은 마녀사냥식 비난에 가세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대 학생 출교 파문’은 대학 당국의 비교육적 처사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진 ‘마녀사냥식 언론보도’와 ‘대학의 자본화’에 더 큰 문제가 있는 셈이다.

고려대 출교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보도를 해왔던 일부 언론

특히 지난해 10월4일 법원이 고려대의 출교처분 효력중지 결정을 내렸을 때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대학 당국의 조치에 비중을 실은 보도를 ‘일방적으로’ 내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보도태도였다.

당시 사태가 발생한 직후 “학생들의 교수 감금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출교 처분을 내릴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는 여론이 있었지만 이는 철저히 언론에 의해 ‘묵살’당했다. 교육기관으로 과연 적절한 행동이었는지는 물론 적법한 절차도 밟지 않은 학교 측의 처사를 문제 삼는 언론도 거의 없었다.

▲ 조선일보 2006년 4월20일자 11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총장이 복학을 공언했을 때 ‘태클’을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다수 언론이 이 총장의 복학 공언 발언과 그에 따른 사태해결 가능성을 주목하는 파격성(?)을 이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대가 다시 퇴학 처분을 내리자 일제히 ‘침묵’으로 돌아서고 있다.

주목할 것 하나. 동아일보의 경우 고려대 출교생과 관련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의 출교처분 효력중지 결정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출교생 문제와 관련해 동아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연세대 편입학 비리는 가끔 사회면에서 비중 있게 보도하더니 정작 본인들과 연관이 있는 고려대 문제에 있어서는 침묵을 지킨다. 고려대는 동아일보의 ‘영원한 성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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