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최대 불효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그것을 최대 소망처럼 안고 살아간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기 아들이 자폐아임을 고백한 김태원의 아내 역시도 그런 몹쓸 소망을 갖고 산다. 누군가에게 그런 소망을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아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쉽게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음악적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던 언더그라운드의 제왕에게 스스로 피에로 분장을 입게 했다. 그리고 그의 눈물겨운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우연인지 장애아를 둔 모든 부부가 그럴 수밖에 없는지 내가 아는 한 부부도 그런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들 부부 역시 자폐아 때문에 가족 전부의 삶을 바꿔야 했다. 항상 돌봐줘야 할 아들을 위해 국내 최고의 기업을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몽땅 빠지고 삼십대에 백발이 되는 희귀한 병까지 얻었다. 집안에 장애아가 있으면 다른 자식은 일찍 어른이 된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집에 자라면서 사춘기도 마치 오지 않은 양 혼자 감당하며 크는 다른 자식의 웃자란 모습도 이 부부에게는 말 못할 아픔이었다. 아마 김태원 부부가 보는 장녀의 모습 또한 그러하리라.

마침 라디오스타에 박완규가 출연하고 있다. 박완규는 당시 유행하던 김래원 머리를 하고 핑클 노래를 부른 김경호에게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서로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런 박완규 아니 다른 라커들도 김태원의 예능 러시에 분명 경멸이 담긴 말들을 암암리에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가난할수록 자존심은 더욱 커지게 된다. 대부분 가난한 라커들에게 음악도 아니고 예능으로 돈벌이에 나선 김태원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은 변절이고 또한 타락으로 보였을 것 또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아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순수한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지켜온 사십 여년 자존심을 꺾은 김태원은 그런 외부의 시선에 이중고를 겪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음악적 자존심을 버리자 그의 음악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도 아직 부활 자체의 경제성은 매우 부족하다고 고백하지만 그래도 진작에 이랬다면 김태원은 여전히 락의 자존심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운명은 순순히 꿀단지를 내주는 법이 없다.

김태원이 아들에 대한 아픔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예능 진출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없다. 김종서도 김태원에 앞서 예능에 전념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예능을 떠나고 다시 대중의 관심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부활 역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 한국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김태원이 예능에 들어선 지 3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국민할매, 감동 멘토의 약발이 먹힐지가 걱정이다.

어떻게 보면 아들을 위해서도, 김태원의 음악 인생 전부인 부활을 위해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틀림없지만 여전히 김태원의 이중생활은 강요된 선택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록 혹은 재즈, 소울 등 비주류 장르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제2의 김태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태원처럼 아주 처절한 이유로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만 몰두하던 뮤지션들이 잠시 나들이하듯 예능도 드나드는 가벼운 발걸음이 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그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든 것들을 너무 이상적이라고 냉소할 뿐이었다.

희망이 있다면 나는 가수다 신드롬이 아주 길게 그리고 넓게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비단 록음악뿐만 아니라 나가수는 재즈, 라틴 등 음악의 다양성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가수 현상을 크게 보면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라 할 수 있겠지만 거기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악의 다양한 색깔을 대중에게 심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재즈가 록음악보다 더 소수의 장르일 것이다. 록은 홍대를 주축으로 한 많은 인디뮤지션들이 지향하고 있지만 재즈는 이렇다 할 젊은 뮤지션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과 한국의 대중문화가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점은 다양성에 있다. 경제력 및 인구 등의 차이에서 오는 시장의 한계도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대중문화는 지나치게 편식경향이 심하다. 그에 대한 반성처럼 나가수 열풍이 뜨겁고, 김태원의 고백에 감동도 받고, 눈물도 흘렸다는 고백이 줄을 잇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대중이 뮤지션들을 감동시킬 때다. 그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가끔은 콘서트에도 찾아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쉽고 간단한 일로 감동받는 것이 쟁이들이고, 빚지고 못사는 그들은 더욱 큰 감동으로 보답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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