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진보신문으로 꼽히는 한겨레에 창간 23년 만에 처음으로 공채 출신의 40대 사장이 당선됐다. 한겨레 창간 주도 세대에서 공채 출신으로 '세대 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변화'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30일 오전, 한겨레 양상우 사장을 만났다.

▲ 양상우 한겨레 사장. ⓒ한겨레 제공
1990년 한겨레에 입사해 노조 위원장, 우리사주조합장, 출판미디어본부장 등을 역임한 양상우 사장은 진보매체, 시민사회와의 연대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양상우 사장은 후보 시절 '개혁진보매체 협의회 신설 추진' '사회단체와의 연대행동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하반기에 종편이 출범하는 등 현실적으로 보수 언론들이 통로를 다 잡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비우호적인 정권으로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진보매체들을) 상당히 불편히 여기고 있습니다. 진보매체들이 모여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작업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나누다가 친구가 되고, 친구에서 연인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서로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단계높은 협력과 연대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다른 진보매체들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고견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미디어스 등이 있겠죠. 이외에 건강한 지역신문을 비롯해서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매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다른 진보 매체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고민과 믿음의 교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연대의 방법을 묻자) 아직 다른 분들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 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진보진영의 대안방송국 역시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양상우 사장은 "아무리 소규모로 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진보진영에서) 한겨레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을 봤을 때 다른 곳보다 솔선수범해서 (대안방송국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5월 15일은 한겨레 창간 23주년 기념일. 양상우 사장은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5월 15일에 '무언가'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사회는 우리 사회를 끌어가는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인 곳이죠. 시민사회와의 교류를 증진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창간 즈음에 한겨레가 시민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틀 거리'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아름다운 동행'은 확대 강화할 것이고, 5월 15일에 제시할 '무언가'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삼성의 '얼굴없는 광고', 많이 개선되고 있다

'외부와의 연대' 에서 한겨레 내부 문제로 눈을 돌리면 '삼성광고 정상화', '에디터제 실시를 중심으로 한 편집국 개편' 등의 현안이 있다.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얼굴없는 광고'에 대해 '정면돌파' 입장을 밝혔던 양 사장은 "3월 들어서 ('얼굴없는 광고' 문제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며 "전년도와 비교할 때 삼성광고의 노출 빈도가 5~10배 이상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면 전체적으로는 (삼성광고가) 줄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 광고 매출을 100으로 봤을 때 예전에는 노출되는 광고가 10이었다면 지금은 50~60에 이른다"며 "그런데 이게 삼성 광고의 전부인 셈이니 전체적으로는 줄었다"고 덧붙였다.

양 사장의 '삼성광고 정면돌파' 공약은 한겨레 편집국과 젊은 사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만약 삼성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양 사장은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의) 판단이나 내용은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만 답변했다.

이어 양 사장은 "우리의 변화도 필요하다"며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인프라를 갖추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매체사업과 관련 부대사업이 첫 번째가 될 것입니다. 또, 새로운 미디어환경에 맞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넷 공간에서 한겨레의 뉴스 점유율이나 영향력은 대단히 높습니다. 새로운 미디어환경은 한겨레로서는 좋은 기회일 수 있어요."

업그레이드된 시대에 발 맞춰 '시대의 화두'에 답할 것

에디터제 실시를 중심으로 한 편집국 개편을 놓고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 사장은 이와 관련해 "새로운 제도가 시행될 때 나오는 우려인 것 같다"며 "에디터제는 현재의 제작 과정을 바꾸는 대단히 큰 씨앗을 잉태하고 있긴 하나 당장 (구성원들의) 적응이 어려운 제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근 단행된 대규모 인사를 놓고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것에 대해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미진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번 인사는 유례없는 큰폭의 인력교체"라며 "(간부인사의 경우) 국실장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조직의 당면과제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배치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양 사장의 공약은 △세대를 아우르는 '파노라마식 편집위원회' 구성 △'PD저널리즘'에 맞설 탐사보도팀 신설 △선임기자팀 운영 △초판 PDF 사업 즉각 폐지 △기사검증 전문가 제도 도입 △상여금 600% 기본급 전환 △전직군 인센티브제 시행 △한겨레정치경제연구소 설립 등이다. '상시적인 공약이행 점검을 받겠다'는 것도 공약 중 하나. "겸임조합과 '공약 점검·평가 약정'을 맺어 공약 이행 평가를 정례화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다음주부터 관련 실무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21일 취임한 양 사장은 향후 3년의 역점 과제로 '시대의 화두에 답하는 것'을 들기도 했다.

"창간 23년이 됐는데 그동안 민족·민중·민주라는 창간정신에 기반해서,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어요. 창간 당시에는 제대로 된 언론이 없었고, 군사독재가 이어지고 있었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시민의식이 상당히 진전됐고 언론환경도 바뀌었어요. 임기 동안 업그레이드된 시대에 발 맞춰 '시대의 화두'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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