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논란이 끝없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된 듯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치는 상황에서, 김영희 피디 교체가 김재철 사장의 강행으로 벌어진 결과라는 사실이 전해지며 새로운 전개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피디수첩 피디 교체와는 너무 다른 반응

'나가수'의 인기가 많기는 많은가 봅니다. 분명 잘못한 김영희 피디에 대한 동정론과 그가 다시 프로그램을 맡아야 한다는 옹호론에 힘이 실린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나가수'가 분명 최고 가수들의 멋진 무대를 보여준 것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지만, 김영희 피디가 애써 외면했던 잘못까지 상쇄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법 한 번 동원했다고 피디를 교체하고 방송 폐지 운운하는 것이 우습다며 정치에나 이런 쓴소리를 하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란 정치인이라는 직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정밀한 혹은 느슨한 정치 구조로 엮여진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별개라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인들만이 정치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그들에게 불가침 성역을 만들어 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피디수첩>은 MB정권이 들어서며 가장 먼저 없애고 싶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방송 장악을 위해서 권력에 가장 비판적인 방송을 제거하는 것은 독재자들의 고유권한이자 의무이기도 할 것입니다. YTN을 시작으로 KBS와 MBC에 낙하산 사장을 투입해 언론장악에 성공한 현 정권은 눈엣가시 같았던 프로그램 정비에 나섰습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을 축소 혹은 강제 폐지하며 그 자리를 예능으로 대체해 현 정권의 막장 정책에는 눈감고 예능에 빠져 살도록 독려하는 것이 현 정권의 방송 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나가수'에 열광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최고 가수들이 펼치는 무대에 대한 감동이 목적이고 즐거움의 전부일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전문방송에 소원한 이유는 대중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가수들이 아닌 인지도가 낮은 가수들까지 모두 나오기 때문에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데 한계를 보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에이스만 출연하는 방송과 에이스뿐 아니라 낮선 이들까지 등장하는 음악전문 방송은 대중적 인기면에서는 태생적 한계를 보일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가수들이 출연하는 <아이콘>에 대한 관심은 낮 시간이라는 한계와 함께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되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역시 마니아 프로그램으로 치부되는 현상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음악전문방송이 거의 폐지된 상황에서 '나가수'의 김영희 피디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예능과 결합시킨 전략은 칭찬할 만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예능 피디로 활약하며 쌓아둔 인연으로 특급 가수들을 출연시킨 것도 그의 공로입니다.

문제는 이 많은 것들을 해놓고도 정작 가장 중요한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가수들과 이미 합의되었던 '재도전'이 시청자들에게는 제대로 공지가 안 된 상황에서 그가 극적으로 행한 방식은 '위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권력자가 있는 사회에 진저리 치고 있던 대중에게 '나가수'의 편법은 좋은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은 스스로 거대한 권력을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고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하지 않지만, 방송은 아직 시청자들의 힘에 의해 좌우하는 공간이기에 대중의 분노가 자연스럽게 '나가수'에 집중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낙하산 타고 내려와 재임까지 하게 된 김재철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정체성을 세탁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생겼나 봅니다. 이례적으로 김영희 피디를 교체하는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원칙을 지키는 문화방송'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은 역겹기까지 합니다.

김영희 피디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악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더욱 피디수첩 연성화를 위해 핵심 피디를 대거 다른 부서로 보내버리는 인사 정책을 쓴 김재철이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나가수'를 통해 만회하려는 움직임은 경악스럽기까지 합니다.

피디수첩 피디 교체와 관련해 잠깐이나마 시사교양국 피디들이 파업까지 불사했지만 대중의 관심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가수'피디와 관련된 논란이 불거지자 대중의 관심은 피디수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겁기만 하네요.

'나가수' 피디 교체와 관련해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고 의도성이 다분했다면 이는 바로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행해진 '피디수첩' 피디 교체는 더욱 시급히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여론을 모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MBC가 바로 서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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