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난 알아요’라는 공전의 히트곡으로 데뷔했다. 노래 자체의 독창성을 떠나 아직 잘 소개되지 않은 ‘랩’이라는 양식을 전면에 세운 컬처 쇼크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창작자로서는 월드와이드 웹의 시대 이전에 빌보드 음악을 수입해주는 역할에 가까웠지만 그들이 대중문화에 미친 파급력은 대단했다. 특유의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활동 기간-재충전-컴백 활동이라는 공식을 세웠고, 랩 댄스와 힙합 같은 낯선 장르를 퍼트렸으며, 사회적 주제를 노래하는 음반 마케팅, 아이돌 문화의 원형을 제시한 것도 서태지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90년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받아들인 세대와 그들의 음악에 적응하지 못한 세대로 대중문화 소비자 그룹과 낙오자 그룹이 갈렸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커트라인 그룹은 당시 20대를 보낸 2차 베이비 부머다(68~74년 출생). 그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회의 새로운 메인스트림이 된 삶의 양식을 일상화한 첫 세대다. 핵가족화와 해외 문화 개방, 대중문화의 번성, 컴퓨터 기기 보급 등이 저들이 성장한 나날의 배경화면이다. 소비 성향과 개인주의, 대중문화 적응력,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에 기반을 두어 스마트 매체를 아우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맹아가 그렇게 퍼졌다. 현재의 40대는 문화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서 5060보다 1020과 가깝고, 전체 세대의 성향을 반으로 가르는 절취선이다. 90년대에는 이런 사회문화적 단절이 '신세대' 혹은 ‘X세대’, ‘신인류’ 같은 이름으로 인격화됐었다. 이런 호명에는 이들의 소비 잠재력을 주목한 시장의 기획이 깔려있었다. 2차 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에 대항할 수 있는 머릿수를 지닌 유일한 인구집단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기억하겠지만, 2012년부터 몇년 간 사회 전방위에서 90년대 복고가 유행했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사의 품격> 등 90년대를 무대로 한, 그 시절의 향수를 소환하며 2010년대로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문화 콘텐츠가 차례로 흥행했었다. 90년대라는 단어는 한동안 신문 지상과 문화계의 화두가 되었다. 이것은 현행 대중문화와 친밀한 데다 청년세대를 압도하는 인구수이지만, 40대가 되어 소비문화와 멀어질 수 있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고정적 소비자로 재편성하는 산업적 흐름이었던 걸로 보인다. 저들이 청춘을 보낸 시절이 미디어에 현현되었고, 소비 주체로서의 향수와 자존감이 주입되며 시장의 주인공으로 호명되었다.

90년대 복고는 ‘사라지는 매개자’다. 이제 더이상 90년대는 미디어에 불려 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출산ᆞ고령화 사회에 맞춰 대중문화를 재편하고 복고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90년대 복고 유행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90년대 복고 패션이 트렌드를 넘어 메인스트림으로 정착했고, 그 시기에 젊음을 보낸 이들을 아직도 젊다고 규정하는 방식으로 세대 개념이 재구획되었다. ‘아재’는 물론 ‘아재 파탈’이라는 낯뜨거운 이름이 유행어가 됐고,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중년’ ‘새로운 40대’를 구성하려는 ‘영 포티’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담론화되었다. '영 포티'는 오래된 이름 '신세대'의 귀환이며, '아재'를 엘레강스하게 조탁한 버전이다. 이제 더는 ‘영 포티’라는 말도 미디어에서 그다지 발설되지 않는다. 그 개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이 사회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저 ‘영 포티’에는 역시 30대 중반을 지나 40대가 되어 가는 에코 부머(79년 출생~)도 포함될 것 같다. 물론 이 현상의 구조적 저변은 기대 수명이 82세까지 늘어나며 전체 인구집단에서 40대가 예전만큼 높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일 테고.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미디어 사회는 칠팔십 년대 생을 넘어 노화되는 인구구성에 맞춰 문화산업을 재편했다. '백세 인생'을 맞이하는 베이비부머(55~63년생)와 2차 베이비부머/에코부머에 맞춘 미디어 상품을 찍어냈다. 시즌 4 방영을 코앞에 둔 <1박 2일> 같은 노년 취향 예능의 롱런과 <아는 형님> 같은 중장년 남성 취향의 예능 프로 흥행이 그런 사례다. 나이 마흔, 쉰 줄에 이른 남자 연예인들이 교실 모양 세트에 앉아 유년기로 퇴행한 것처럼 정신 줄을 풀어놓고 논다. <미운 우리 새끼>는 초혼연령 상승과 비혼 가구 증가, 저임금 및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늙은 소년’으로 부모에게 얹혀사는 에코 부머와 그들을 자녀로 둔 베이비 부머라는 세일즈 대상을 교차 결합한 예능프로다.

90년대 복고 유행은 2차 베이비부머가 '불혹'이 되는 과도기,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에서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현상이었다. 또한 출산율 감소로 00년대까지 대중문화 시장을 주도하던 1020 세대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트렌드를 소비하는 또 다른 세대가 등장하는 챕터였다. 2차 베이비부머와 에코 부머는 90년대와 00년대에 1020세대였다. 사실은 그들은 그때도 지금도 문화 소비의 주인공이고, 향후 '초고령화 사회'에서 최신 대중문화, 하위문화의 소비 연령을 지금껏 본 적 없을 만큼 높일 수도 있겠다. 사회적으로 중간 관리자에 이른 기성세대가 젊음의 자의식에 젖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아니면 정리해고당할 처지에 놓인 양반들이 ‘젊은 오빠’로 불려봐야 뭐에 쓸 것인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 눈앞의 사회 경제적 현실이 교란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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