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CP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 약속과 원칙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바꾸고자 했으나 프로그램의 묘미를 위해 설명을 미룬 것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불러왔다. 그러자 너무도 빨리 MBC 임원진은 김영희 CP를 나가수에서 밀어냈다.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어안이 벙벙한 사태에 대중들도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잘못을 했더라도 경질은 너무 지나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김영희 CP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과는 달리 그를 자른 임원진들은 묵묵부답이다.
뭔가 많이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김영희 CP가 잘못을 했지만 징계가 너무 빠르고 지나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그 배후에는 MBC 임원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던 것이다. 29일 MBC 노조가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희 CP 경질은 김재철 사장 주도 하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된 것이다. 문제는 PD 인사는 사장이 나설 일이 아니라 국장 책임 하에 내부적으로 이뤄질 일이라는 점이다. 그런 원칙을 무시하고 사장이 나서서 PD를 자른 것은 분명 월권이고, 룰을 어긴 것이다.
도대체 김재철 사장이 원해서 못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MBC 양심의 상징 100분 토론 손석희를 잘라냈고, 의미 있는 시사 프로그램 더블유와 지금까지 있었다면 나가수 열풍에 힘입어 시청률을 회복했을 수 있는 음악여행 라라라를 폐지했고 요즘은 MBC의 마지막 희망 PD수첩까지 흔들어대고 있다. 이러니 MBC 노조가 그를 X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옳건 그르건 MBC 내부의 문제라 대중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김영희 CP 경질은 문제가 다르다. 김영희 CP 경질의 이유가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겼고, 그래서 벌어진 사회적 비난이었다면 이미 27일 방송을 통해서 대중은 양해했고 그를 용서했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는 상황에도 김영희 CP는 나가수 제작에 장인정신을 고수했고 그 방송제작의 결과로 엄청난 감동의 피드백이 이뤄졌다. 그 감동은 한 주 전 상황에 대해서 용서하고 또 화해를 청하는 훈훈한 모습을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서 김영희 CP에게 쏟아졌던 비난의 원인이 사라진 것이다.
김영희 CP의 잘못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면 김재철 사장은 시청자의 감정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더 질이 나쁜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재도전 논란에 대한 아주 커다란 착각도 갖고 있는 듯하다. 대중이 김영희 CP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정과 신뢰가 있기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아마도 착각하고픈 목적의식이 대중의 반응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게 강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MBC 임원진은 알아야 한다. 나가수는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가요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 중요한 문화현상으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중심에 김영희 CP가 있었다는 것을 대중이 인정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과 MBC 임원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건강성 회복을 위한 이 중요한 변화를 망치는 결정을 뚝딱 해치웠다. 그 결정이 나가수의 미래에 더 나아가 가요계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조짐에 어떤 변수가 될지 알 수 없다. 이제 김재철이란 이름은 단지 MBC의 X맨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의 X맨이 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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