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축구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선수는 바로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뛰고 있는 올림픽대표팀 기대주 김귀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다 한국을 떠나 남미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운 김귀현은 마침내 아르헨티나 1부 리그 팀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으며 조금씩 꽃망울을 틔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에게 말하지 못할 아픔이 있었습니다. 바로 폐질환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 김직 씨 때문입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부모였지만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꿈을 키운 김귀현에게 아버지의 시한부 판정은 그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굳은 각오를 갖고 김귀현은 더욱 이를 악물고 꿈을 키웠고 마침내 홍명보 감독의 눈에도 들어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며 생애 첫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아버지는 임자도에서 400여km나 떨어진 울산까지 산소마스크를 부착하고 달려갔고 마침내 아버지와 태극마크를 단 아들의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크게 뒷바라지를 하지는 못해도 아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뛴 아들의 모습은 많은 축구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U-23) 대표팀에 깜짝 발탁된 수비형 미드필더 김귀현(20·아르헨티나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아버지 김직씨가 27일 오후 중국과의 평가전이 열린 울산문수경기장을 찾아 아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인공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김씨는 현재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꼽는다면 바로 치맛바람입니다. 자녀를 향한 한국 어머니의 뜨거운 모정이 교육열로 이어져 때로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좀 사정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비롯된 '사커맘'이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고 하지만 유독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선수들이 상당히 부각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사커 대디'의 힘이 한국 축구를 키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국가대표, 올림픽대표 등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들을 보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이 유독 눈길을 끕니다. 선수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꿈을 키우는 선수도 있는가 하면 '사커맘'처럼 아예 선수의 뒷바라지를 하는 '진짜 사커 대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유형을 떠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아들의 재능과 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 이들 덕분에 부쩍 성장해가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선수들 덕분에 축구계에서만큼은 '아버지'라는 키워드가 부쩍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축구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 손흥민하면 아버지 손웅정 춘천 FC 감독을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흥민을 8살 때부터 8년 동안 매일 5시간 이상 훈련을 시키며 탄탄한 기본기와 기술을 갖추게 하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인 손 감독의 '아들 키우기'는 어린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 팀의 주전급 선수로 주목받는 힘이 됐습니다. 평소에는 자상하면서도 공만 있으면 냉정해지는 아버지 손 감독의 '애정어린 채찍'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 있게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줄 아는 손흥민을 키웠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손흥민은 군말 없이 따르고 스승님처럼 모셨고, 어느 부자보다도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명문 야약스에서 활약 중인 석현준과 아버지 석종오 씨 사연도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습니다. 평소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성공하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석현준의 아버지는 석현준을 지금까지 성장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잇단 사업 실패와 이혼 등으로 어려운 가정생활이 이어졌지만 축구선수로 꿈을 키운 아들 석현준을 위해 아버지 석종오 씨는 하고 있던 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런 정성 덕에 석현준은 꽤 이른 시기에 유럽 무대에 진출해 새 꿈을 키웠고, 지난해 말에는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리고는 네덜란드에서 한국에 귀국하자 입국장에서 석현준에게 입맞춤을 한 아버지의 모습은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아들 석현준과 입맞춤하는 아버지 석종오 씨 ⓒ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영원한 심장' 박지성의 뒤에는 헌신적인 아버지 박성종 씨의 묵묵한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박씨는 지금도 박지성 축구센터, 재단, 에이전트 등 박지성과 관련한 축구 외적인 일을 총괄 지휘하면서 아들의 성공을 돕고 있는데요. 아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올인'하다시피 한 노력은 오늘날의 박지성을 키우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또 선수 출신인 아버지 기영옥 씨의 영향을 받아 자율적으로 축구를 즐기면서 부쩍 성장한 기성용,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해 역시 프랑스 무대에서 커 나가고 있는 남태희의 사례도 아버지 덕분에 의지를 갖고 성장한 케이스로 꼽을 만합니다. 그밖에도 중학교 중퇴를 결심하고 축구 선수로서 꿈을 키우려는 아들 이청용을 위해 전적으로 격려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이장근 씨 덕분에 한국 축구의 새로운 기둥이 세워졌습니다.

보통 자식의 교육을 뒷바라지하는 몫이 주로 어머니에게 집중돼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아버지가 소홀한 대접을 받고 권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헌신적이면서도 때로는 엄하고 또 때로는 자상하게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사커 대디'들의 활약은 한국 축구의 성장 뿐 아니라 무너지는 것 같았던 아버지의 위상을 살리는 계기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이렇게 훈훈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올림픽대표로 성공한 사례들만 언급했지만 지금도 챌린지리그 등 초,중,고교 축구 경기 취재를 가면 열정적으로 아들을 돕고 응원해주는 아버지들을 많이 보곤 합니다. 그런 응원과 힘이 한국 축구를 성장시키는 새로운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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