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다음날 비주전 위주로 치른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완승을 하는 등 깔끔하게 봄맞이를 하며 기분 좋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소집 후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 하는 플레이로 조광래 감독이 추구한 새로운 축구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이를 경기장에서 최대한 드러내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하면서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박지성, 이영표라는 두 기둥이 은퇴한 가운데서도 많은 가능성을 드러내며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사실상 첫 출발을 순조롭게 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있었습니다.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차를 좁히는 일은 6개월 후부터 있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을 진행하면서도 풀어야 할 난제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평가전 이후 3개월 간의 '대표팀 공백기'를 거치면서 상승세를 탔던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꾸준하게 경기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도 봤습니다. 또 기본적인 밑바탕은 그려졌지만 패스, 움직임, 체력 등 보다 완벽한 작품을 위해 세밀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광래 감독의 꾸준한 연구와 실험 정신, 그리고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는 큰 숙제도 남겼습니다.

▲ 온두라스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이정수가 한국팀 첫골을 성공시킨 뒤 박주영과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축구대표팀의 '봄맞이 평가전'은 분명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상대가 약했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모습조차 보이지 못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연습한 것을 시도하면서 2경기 6골로 연결시킨 것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결과였습니다. 변화무쌍한 전술 운영, 선수들의 유기적인 플레이, 4골 모두 서로 다른 선수들이 득점을 성공시킨 것 모두 한 마디로 90점 이상의 모습들이었습니다.

특히 조광래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포지션 파괴에도 선수들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몇몇 선수들은 가능성 있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길을 끈 선수는 바로 미드필더 김정우와 기성용이었습니다.

이전 허정무호 때와는 다른 포지션 변화 속에서도 이들은 숨겨진 본능을 자랑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사실 이 조합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리그에서 득점 선두에 올라있는 김정우의 상승세를 대표팀에서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정우는 본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원했고, 결국 내부 진통 끝에 김정우를 이용래와 짝을 이뤄 공격형 미드필더로, 역시 최근 소속팀 셀틱에서 수비 역할도 잘 소화하고 있는 기성용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시키며 '상생 조합'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결과적으로 이들의 조합은 미드필더를 장악한 플레이를 펼치기를 바라는 조광래 감독의 기본적인 뜻과도 잘 맞아떨어지며 원하는 경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김정우의 폼이 후반에 떨어지는 감이 있었지만 일단 기량 좋은 선수들이 한 포지션에서 두루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찾은 것은 큰 성과였습니다.

또 박주영은 다양한 포지션 변경으로 공격 기회를 끌어내고 골까지 뽑는 등 역시 지능적이고 감각적인 선수다운 면모를 보이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지난 1월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이 직접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김보경도 영리하고 패기 넘치는 경기력으로 출전 시간 55분 동안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다시 주목받는 신예가 됐습니다. 이렇게 선수들 스스로 자신이 갖고 있던 역량을 보여주고 호흡도 잘 맞아 떨어지면서 다양한 공격이 나오고 시원스러운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조 감독 역시 이러한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열린 대구FC와의 경기에서 조광래 감독은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신예 선수들이 많았기에 기본적인 기량을 봤다고 했지만 "대표답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아쉬운 선수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기본적인 밑바탕은 그렸지만 이를 채울 만한 색을 다채롭게 그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소집 이후 실험이 없다고 했던 기본 입장을 바꿔 계속 선수를 찾겠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온두라스전 승리가 다양한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 경기였지만 제대로 된 팀을 갖추기 위한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세대교체, 그리고 팀 리빌딩 작업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마당에 온두라스전을 통해 선수를 미리 정해놓고 간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무리였다는 얘깁니다.

경기를 통해 꾸준하게 팀을 가꿔 나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키워가는 작업이 잘 이뤄져야 좋은 팀을 만들고 조광래호의 최종 목표인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알차게 치를 수 있습니다. 이미 전임 허정무호 시절만 봐도 월드컵 예선을 치르면서 기성용, 이청용이 부쩍 성장해 주축으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호 때도 주전-비주전의 격차를 줄일 만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문제가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가운데서 꾸준한 선수 발굴과 이를 적극 밀어주는 환경이 있다면 당연히 부각되는 선수는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이 더 많아지면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게나마 조 감독이 "이번 경기를 끝으로 실험이 없다"고 한 발언을 뒤집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조광래호의 '만화 축구'는 실험 정신이 잘 깃든 축구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전의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무언가 '생각하는 축구'로 틀 자체를 바꾸고 있는 '만화 축구'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부분적으로 실현해 가능성을 보이며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이제 이 만화 축구에 적응할 만한 보다 더 다양한 자원을 찾는 것도 동반돼야 합니다. 지금 당장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할지라도 꾸준하게 기회를 주고 경험을 쌓게 한다면 좋은 기량과 전술을 갖춘 '선진형'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고 결과적으로는 국가대표 축구, K리그 등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든, 비판을 받든, 어찌 됐든 전술적으로, 또 선수 개인에 대한 조광래호의 틀을 깨는 실험 정신, 개척 정신은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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