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희망을 남겼습니다. 모처럼 찾은 기회였던 만큼 초심으로 돌아간 자세로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경기 종료 직전 골까지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담담하게 골 세레모니를 펼쳤지만 정말 간만에 국내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스스로 평했을 만큼 선수 개인적으로나,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골이었고, 또 활약을 펼쳤던 그였습니다.

'태양의 아들', 한때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불렸던 사나이 이근호(주빌로 이와타)가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2년 만에 국가대표 A매치 골을 뽑아내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근호는 지난 25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후반 11분 김보경과 교체 투입돼 30여 분간 활약하면서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 기회를 엿보다 경기 종료 직전 기성용의 코너킥을 헤딩슛으로 깔끔하게 골을 뽑아내며 4-0 대승의 화룡점정을 찍어냈습니다. 지난 2009년 3월,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패널티킥 골을 성공시킨 이후 꼭 2년 만에 터진 골이자 저물어가던 태양이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살린 의미 있는 골이었습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간절함 속에서 최선을 다 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더니 결국에는 부활포를 터트리며 팬들의 박수를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 한국 축구대표팀 이근호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세번째 쐐기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이근호의 상황은 아주 좋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시계를 좀 더 거꾸로 돌려 꼭 1년 전인 지난해 이맘때에는 이근호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말까지 들었을 만큼 1년 전의 이근호는 그래도 '괜찮은 공격수'로 평가받을 만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1년 전인 2009년 중반, 유럽 진출 실패로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기면서 이근호의 플레이도 점점 떨어져만 갔습니다. 자신의 장점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하더니 공격수임에도 골을 넣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됐습니다. 급기야 월드컵 최종엔트리 제출 직전에 탈락하는 불운을 맛보며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구자철, 신형민 등 함께 탈락한 선수들이 귀국 후 기자들과 가볍게 인터뷰를 한 사이 그는 조용히 일본행 비행기로 갈아타 자취를 감췄습니다. 충격이 컸다는 얘깁니다.

이후 조광래호 출범 첫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에 다시 발탁됐지만 이근호의 플레이를 그라운드에서 다시 보지는 못했습니다. 폼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자 조광래 감독은 공개적으로 이근호에 채찍질을 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래도 별다르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시안컵에는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넣고 정작 대표팀 소집 훈련에는 부르지 않는 '충격 요법'까지 가했습니다. 설상가상 일본 J리그에서도 활약이 미미하자 그의 근황이 어떤지 궁금해 하는 팬들도 점점 줄어들어만 갔습니다. 기억에서도 멀어지는 공격수로 전락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근호는 죽지 않았습니다. 겨울동안 피나는 노력을 벌이며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잇달아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활력 있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이자 조광래 감독 역시 기회를 줬고, 모처럼 찾은 기회를 이근호는 어떻게든 살려내려 했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은 결국 후반 종료 직전에 쐐기골로 연결시키는 힘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레이스를 펼친 끝에 일단 다시 오름세를 이어가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터닝포인트도 찾았습니다.

물론 이근호의 온두라스전 플레이가 완전하게 만족스럽다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었습니다. 특유의 활력 있고 패기 넘치는 경기력은 눈에 띄었지만 동료 선수들과의 유기적인 호흡, 팀플레이에서는 다소 맞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호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팀 분위기 속에서 뭔가 색깔을 맞춰 나가려는 자세, 특히 자신이 대표팀에서 뛰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준 플레이만큼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했습니다. 조광래 감독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하게 지켜볼 뜻이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적어도 이근호가 온두라스전을 통해서 태극마크를 꾸준하게 달고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어가는 희망을 살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온두라스전에서 골을 넣었다고 해서 이근호가 완전히 살아났다고 보면 안 됩니다. 최근의 상승세를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기대가 큰 선수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가차없이 '행동'으로 평가를 하는 조광래 감독 앞에서라면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근호입니다. 그러나 이근호는 충분히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지난 2008년-2009년 초반처럼 한창 물올랐을 때 이근호는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보여줄 줄 아는 공격수였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기술을 갖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근호의 대표팀 롱런은 실현될 것입니다. 더 이상 '불운하다'는 딱지도 붙일 일이 없을 것입니다.

2006년 인천 2군 시절에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구 FC로 이적, 2년 만에 국가대표 꿈까지 이뤘던 '2군 신화' 주인공 이근호. 신화 줄거리를 보면 대부분 주인공이 잠시 시련을 맞다 마지막에 크게 떠오르며 행복하게 마무리되곤 하는데요. 이근호가 쓸 '2군 신화의 새로운 버전'은 전편보다 더 짜릿하게, 그래서 개인에게나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나 더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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