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미디어 융합시대에 기존 낡은 법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개선안의 골격을 마련, 의견수렴 절차에 돌입했다. 골자는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의 대표격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방송규제틀 안에 포함시키고,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방송법상 구분을 명확히 해 공적책무 강화와 매체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OTT에 대한 방송규제 논의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OTT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이 확보될 때 성립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공·민영방송 구분안이 방송 전반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짜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8일 '중장기 방송제도개선과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개편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미디어스)

방통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8일 '중장기 방송제도개선과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개편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4월 방통위가 구성한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학계, 전문가, 시민사회, 국민 의견수렴을 시작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종원 KISDI 연구실장은 이번 중장기 제도개선의 범위와 방향이 크게 방송통신 규제체계의 정비와 방송규제체계의 재구조화에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TV 중심이었던 방송환경은 방송과 통신 기술의 융합에 따른 뉴미디어의 등장과 확산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방송법은 20년 간 정체된 낡은 체계로 새로운 방송환경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회에서도 '통합방송법' 등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연구실장은 수평적 규제체계의 이행을 전제로 OTT의 글로벌 사업자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고 국내 사업자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방송을 공적영역과 민간영역으로 분류해 공적 영역 사업자는 공공성 확보를, 민간 영역 사업자는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 규정을 통해 자율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라고 제도개선 방안을 밝혔다.

OTT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

이어진 황준호 KISDI 연구원의 발제에선 OTT 정책방향의 구체적 안이 소개됐다. 우선 방송의 개념이 재정립됐다. '방송'을 '방송서비스'로 정의하고, '시청각미디어서비스'(가칭) 개념을 신설해 방송서비스를 시청각미디어서비스의 한 유형으로 위치시켰다. '방송서비스'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콘텐츠 소싱과 스케쥴링(편성)이다. 방송통신설비, 전송기술, 수신방식, 제작은 방송서비스를 규정하는 요소에서 제외했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는 네트워크 특성과 관계없이 편집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동영상서비스로 분류했다. 방송망과 인터넷망을 통한 실시간서비스(실시간 방송·OTT), 주문형서비스(VOD. 방송·OTT)가 전부 포함된다.

이에 따른 방송의 범위를 두 가지 안으로 제시했는데, 1안은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방송으로 포함하는 안, 2안은 지상파만을 방송으로 한정하는 안이다. 황 연구원은 1안의 경우 융합환경에 부합하지만 방송의 특수성이 형해화될 수 있고, 2안의 경우 지상파의 특수성을 보존하면서 신규서비스 도입과 유료방송 규제완화를 견인할 수 있지만 방송의 공적책임 담지자가 축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한국콘텐츠진흥원)

OTT에 대한 규제방향은 ▲금지행위 및 분쟁조정 ▲자료제출 의무화 ▲내용규제 등이다. 방송사와 OTT 간 금지행위 규제와 분쟁조정을 위한 법적 근거를 방송법과 전기통산사업법에 마련하고, OTT 시장 경쟁상황평가를 위한 기초자료 제출을 일정 규모 이상의 OTT 사업자에 의무화하고, OTT 유해물에 대해 규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기초자료는 매출, 가입자, 상품정보, 요금, 이용실태 등의 자료를 의미한다. 내용규제의 경우 기존 방송심의규정을 적용하되 방송보다는 완화된 심의기준을 적용하거나, 정보통신망법이나 정보통신심의규정에 동영상콘텐츠 규제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 같은 안에 대해 토론자들 사이에서는 규제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 집행력을 행정부가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OTT 시장의 실태파악과 이용자 중심의 정책을 펴 나가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해외 사업자를 포함한 규제 집행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석철 SBS 정책위원은 "OTT 규제가 만들어진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국내 사업자만 규제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해외 사업자가 따르겠냐는 것이다"라며 "먼저 해야할 일은 국세청이든 공정위든, 정부가 해외 OTT를 규제할 수 있다는 행정력을 발휘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부과, 자료제출 등 행정력이 정말 미치는지 보여줄 때 규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희주 웨이브(wavve) 플랫폼사업본부장은 "규제체계 분류를 논의하기 전에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유튜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미디어가 없다. 자칫 우리만 발목잡힐 수 있다. 글로벌 OTT 규제 실효성이 담보된다면 이대로 가도 되는데 그게 안될 것 같으면 기존 미디어 규제 사슬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자문위원은 "OTT 규제에서 필요한 건 OTT와 유료방송의 경쟁관계에 대한 비례규제도 중요하지만, 자료제출의 의무화다. 기초자료라고 하는 부분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자문위원은 "OTT 사업자의 강력한 권한은 알고리즘 배치다. 이 부분에 있어 방통위와 KISDI는 글로벌 사업자를 포함해 이용자 중심의 지능정보사회를 도모해야 한다"며 "이 같은 가이드라인들이 글로벌 사업자에 강제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경우 다 공개하라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의 기준이 되는 큰 범주를 공개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 팀장은 "(규제당국이) OTT 미래예측에 실패한 것 아닌가. 넷플릭스가 오늘날에야 국내에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나. 어떤 것을 하든 빨리 하는 게 낫다"며 정책연구 시기가 뒤늦었다는 점을 지적한 뒤 "자료제출 의무화를 보면 국정감사 때마다 구글 사장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는 것이 오버랩된다"고 지적했다. 한 팀장은 "(해외사업자 규제집행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동일 규제를 했을 때 동일한 걸 얻어낼 수 있고, 동일한 시청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 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방송 공·민영 분류, 미디어 융합시대 방송산업 생존과 공공성 책무 사이

이종원 KISDI 연구실장은 "우리 방송은 공적영역의 방송과 민간영역의 방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책무가 분명하지 않다"며 "방송법상 모든 방송사업자는 공공성, 공익성 등의 가치를 동등하게 부여받고 있지만 현행 방송체계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해 대응해 방송의 공적가치 실현과 융합 경쟁을 활성화하기에는 한계를 보인다"고 공·민영 분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방송·통신 융합 등 미디어 환경 변화로 공영방송은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고, 민영방송은 규제틀에 갇혀 혁신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에 공영방송에 명확한 공적책무를 부여하면서 공적재원을 지원하고, 공익규제 성격이 강한 방송법의 체질을 시장규율에 맞게 정비해 사전규제 완화 등을 통한 민영방송 활성화를 도모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법적 분류는 크게 '공영방송', '공공서비스방송'(PSB, Public Service Broadcasting), '민영방송' 등 세 구간으로 이루어진다.

공영방송은 '영조물'로서 법적으로 규정된다. '영조물'은 국가나 공공단체에 의해 공익목적을 지속실현하는 인적·물적 시설물을 말한다. KBS와 EBS가 공영방송으로 규정돼 공적 책무를 부과받는다. 공영방송에는 공적책무 수행을 위한 정부 지원의 근거가 마련된다.

PSB는 면허체계를 통한 '자기규율성' 관점에서 규정된다. 법률로 PSB의 공적책무를 규정하면 방송사가 PSB임을 선언(신청), 지배구조와 설명책임을 부과(면허 부여)하고 공적재원을 지원한다. MBC와 정부·공공기관 운영채널이 해당 제도개선과 연계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에 부과되는 공적책무 규정과 평가체계가 구체화된다. 해외사례 등을 고려해 재설계될 방침인데, 일례로 영국은 왕실 칙허장과 커뮤니케이션법 등을 통해 공영방송 BBC의 공적 목표와 PSB에 대한 공적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공영방송 평가체계는 공적책무를 '협약' 형태로 구체화 해 기존 재허가 제도를 '공적책무 협약'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3~5년 주기의 서비스별 공적책무 방향을 수립해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가 협약을 맺는 방식이다. 공적책무는 기본책무와 해당시기 특별책무로 구성된다. 평가는 공영방송사가 '공적책무 이행실적 및 사업계획서'를 정부에 보고하면, '공영방송평가위원회'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5년 단위 평가와 1년 단위 평가가 이뤄진다. 이 협약은 수신료를 비롯한 공영방송 재원 대책과 결합된다.

방송법은 사전규제 완화 등 시장규율체계에 맞게 정비된다. 공익규제 성격을 갖는 현행 방송법은 모든 방송사업자에게 진입규제, 소유겸영규제, 편성·광고 규제 등의 많은 사전규제를 부과해 시장규율체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방송재원은 공영방송과 PSB 운영을 위한 '공적 재원'과 방송 관련 시장에서의 발생수익을 의미하는 '상업적 재원'의 개념으로 정립된다. 두 재원에 대한 제도개선이 이뤄지게 되는데, 공적재원의 경우 공민영체계 개편에 기반한 TV수신료, 기금 등 관련 재원이 개선되며 상업적 재원의 경우 방송광고규제의 전면적인 재정비와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 제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이밖에 방송의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참여모델'에 방점을 찍은 시청자 권익 강화와 지역방송 생존을 위한 검토 방안들이 제시됐다. 지역방송의 경우 소유겸영, 권역, 방송광고결합판매, 수중계 편성기준 등에 대한 규제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안됐다.

이 같은 방안에 토론자들 중 시민사회측에서는 자칫 공적규제의 범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공영방송의 공적책무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공·민영 이원체계가 규제의 공적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의 의견을 종합해 밝힌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민영방송체계의 궁극적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공영방송의 특별한 책무 수립이 안 된 상태에서 이분법 틀로 나누는 것은 공영의 축소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MBC가 PSB를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 아닌가. 지역성 구현도 지역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지역방송이 아닌 지역 방송산업 논리에 기울어져 논의한 것 아닌가"라며 주요 제도개선책들이 산업논리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사전규제 정비 등으로 대주주의 소유지분 문제 등 경제적 독립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을 우려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방송 규정이라면 공공성 책무를 전반으로 이루어지고,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가 더 강화되는 개념이어야 한다"며 "공민영 구분이 필요할 수는 있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과연 구분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공공성의 강화를 전반적으로 올리는 방향에서 논의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제도개선 추진반에 참여한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공·민영을 나누는 게 가능한가, 모호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지금 문제는 잘못하면 다 같이 죽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큰 그림을 전제로 공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와야 한다. 관습적인 공공성이 아닌 사업자들이 (공공성을) 만들어 낼 수 있게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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