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유예 결정을 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한일 양국간 갈등해소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과 외교안보라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린다.

'일본 외교의 승리'라는 식의 일본 정부 측 입장이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강한 어조를 통해 작심 비판에 나선 것을 두고도 적절했다는 반응과 과하다는 반응이 교차한다.

25일 대다수 주요 언론들은 지소미아 종료 유예 후 이어지는 한·일 정상회담 추진 국면 등을 언급하며 양국 간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3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다음달 말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때 한-일 양자 간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일본 쪽과 조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취지의 25일자 주요 일간지 사설 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 <'한-일 합의' 아전인수 왜곡 말고 성실히 교섭 응해야>
경향신문 <한·일 정상회담 개최 공감, 갈등 해소 돌파구 마련하길>
한국일보 <일본, 수출규제 철회 협상에서 진정성 보여야>
서울신문 <지소미아 연기, 한미일 갈등 해소 지렛대 돼야>
동아일보 <韓日 내달 정상회담, ‘국내정치’ 넘어선 진정한 ‘정치력’을>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효력을 조건부 연장하면서 국장급 정책 대화를 시작하기로 한 데 이어 정상회담 개최에 공감한 것"이라며 "한·일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이 조속히 풀리기를 기대한다. 이 같은 대화 분위기는 그동안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을 꺼려왔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일본의 수출규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해법 모색의 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고, 서울신문은 "지소미아 조건부 유지 결정 이후 한일 두 나라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한일 간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수출 규제 문제도 풀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다만 정부 발표 이후 알려진 일본 측 반응과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반응을 두고선 입장이 갈렸다. 24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 안 했다. 미국 압박에 한국이 물러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고,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가 지소미아 관련 한일 간 갈등이 '일본의 퍼펙트 게임으로 끝났다. 협의는 하겠지만 타협하진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어 "일본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외교협상을 하는 데 있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지소미아 종료 통보 효력과 WTO 제소 절차 정지의 결정은 모두 조건부였고 또 잠정적"이라고 경고했다. 정 국가안보실장은 "깊은 유감", "견강부회" 등의 표현을 사용했고, 또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베 총리를 겨냥해 "지도자로서 양심 갖고 한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 입장에 대해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한미동맹의 무게를 감안할 때 일본 아베 내각이 자국 정치의 범위를 넘어 우리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고 한미 간 갈등까지 조장하는 듯한 상황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며 다소 과한 측면이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필요했다고 본다"고 평했다. 이어 "일본이 우리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며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면 우리 정부는 적잖은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일본이)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협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겨레는 "이런 날 선 대립은 앞으로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라며 "아베 정부는 국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할 게 아니라 한-일 외교 현안에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청와대도 맞대응으로 사태를 더 키우기보다는 차분히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이대로라면 내달 정상회담이 제대로 성사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신경전은 다분히 자국 내 여론, 특히 지지층을 의식한 국내정치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고, 서울신문은 "연말 전후로 우리 법원이 배상금액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할 수 있어 양국은 일정 진행을 서둘러야 하고, 그때까지 서로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책임을 묻는 데 방점을 찍었다. 조선일보는 사설 <나라만 멍든 지소미아 소동, 안보라인 책임 물어야 한다>에서 "외교적 완패였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큰소리는 빈말이 됐다"며 "뒷감당도 못 하면서 만용만 부린 외교·안보 참모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놓고 '판정승을 거뒀다'고 우기기까지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지난 3개월동안 벌어진 이 터무니없는 사태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며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국민을 속인 안보실장과 지소미아 파기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처럼 대통령 판단을 흐리게 한 안보실 2차장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신문 11월 25일 <한국 외교실력 드러낸 'GSOMIA 파동'>

경향신문에서도 외교안보라인의 책임을 묻는 지적이 나왔다. 유신모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는 칼럼 <한국 외교실력 드러낸 'GSOMIA 파동'>에서 "사태의 전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소홀히 다루다가 한·일 갈등에 미국까지 끌어들이는 자충수를 둔 끝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총평했다.

유 기자는 "이 협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논란을 벌이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대일 카드로 이 협정을 종료시키고 미국을 판에 끌어들인 것이 전략적으로 맞는 선택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본질"이라며 "지난 8월 청와대가 이 협정을 종료하면서 '미국도 이해하고있다'거나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라고 브리핑한 것을 지금 돌이켜 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정세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 기자는 "이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느 자명하다.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국가 안보를 맡길 수는 없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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