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결과를 다룬 동아 조선 중앙의 보도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자(7일)에서 이들 세 신문이 이 사안을 어떻게 다뤘는지 일단 한번 살펴보자.

동아 <“경제현실 감안…사회봉사 대안 택해”>(14면)
조선 <재판부 “8400억 아까워 말고 내라”>(10면)
중앙 <“돈 많은 사람, 돈으로 사회공헌”>(6면)

▲ 동아일보 9월7일자 14면.
재판부의 판결에 비중 실은 조중동…사설 없는 것도 공통

위에서 언급한 기사는 모두 관련기사다. 세 신문 모두 1면에 스트레이트 기사를 언급한 뒤 이들 기사를 관련기사로 처리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상당히 비중을 실었다. ‘방점’을 세게 찍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또 있다. 이들 세 신문은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사설을 싣지 않았다. 사설을 통한 논평이 없다는 점 역시 ‘닮은꼴’이다. 경향 세계 한겨레 한국 등이 사설을 통해 입장을 실은 것과는 대조적. 나머지 신문들도 사설이 없지 않냐고? 맞다. 없다. 하지만 이번 항소심 선고에 대한 평가는 있다. 다음과 같다.

▲ 중앙일보 9월7일자 6면.
경향 <사회공헌으로 죗값 갈음…법원 ‘제3의 길’ 논란>(3면)
국민 <“역시 유전무죄” 솜방망이 처벌 논란>(8면)
서울 <기부가 사회봉사?…형평성 논란>(6면)
세계 <…이 대법원장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의지 퇴색>(8면)
한국 <‘경제현실’ 앞에 저버린 ‘재벌엄단’ 약속>(5면)
한겨레 <‘회장 구속되면 부도 위기’ 재계 논리 치우쳐>(3면)

조중동을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의 경우 이번 판결이 가진 ‘최소한의 문제점’은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점이 조중동과 ‘나머지 신문들’의 차이점이다.

▲ 조선일보 9월7일자 10면.
물론 조중동 또한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기사에서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중이 너무 적다. 참여연대의 논평을 ‘한 단락’ 언급해주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고 보니 참여연대의 성명을 인용하는 ‘방식’도 닮았다.

정리하자. 자체적인 논평이나 평가가 없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도 없으며 재판부의 결정에 비중일 싣고 있는 조중동은 ‘참’ ‘너무’ ‘많이도’ 닮았다. 이러니 조중동이라는 말이 아직 유효한 것이다.

조중동에선 이번 판결의 문제점은 찾아볼 수 없다

▲ 경향신문 9월7일자 3면.
조중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번 판결이 지닌 문제점은 뭘까. 한겨레가 7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법원이 ‘법 원칙’보다 ‘경제 현실’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법원이 법의 논리보다 경제논리를 더 우선시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러 논쟁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재판부의 이번 결정이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은 기업범죄를 저질러도 ‘돈만 있으면’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공고히 했다는 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불신을 더욱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신문이 ‘이례적 판결’이라며 언급한 사회봉사 명령도 이례적인 판결이라는 해석에 그칠 게 아니라 그 실효성에 대해 정면으로 짚는 노력이 우선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웬걸? 실효성을 제대로 짚는 것은 고사하고 “사회봉사명령을 통해 사회공헌기금 납부를 이행토록 한 것은 상당한 강제력을 갖게 된다”(중앙일보)고 의미부여까지 한다.

▲ 한겨레 9월7일자 3면.
그러면서 현대차, 현대모비스, 글로비스, 기아차, 현대제철 등 5개 계열사가 현대카드와 현대하이스코, 로템 등 다른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현대차그룹에게 631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이 조치는 ‘깔아뭉갠다’. 조선이 7일자 10면 맨하단에 짧게 언급했고 중앙은 같은 날짜 6면에 2단으로 처리했다. 동아일보만이 2면에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돈 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돈으로 사회공헌을 하면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죄를 지었으니 몸으로 때워야 된다’는 게 이들 세 신문의 가치이자 철학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이번 재판부의 항소심 선고가 가진 문제점 하나 제대로 짚지 않은 이들 세 신문의 오늘자(7일) 지면구성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면서 오랜만에 조중동의 닮은꼴을 체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조중동’이란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정몽구 회장과 조중동의 '닮은꼴'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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