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쇼트트랙은 그야말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낸 데 이어 선발전 승부 담합 파문, 각종 의혹 등으로 빙상계 뿐 아니라 체육계 전체에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발전 방식이 "담합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타임레이스 제도로 바뀌면서 후폭풍을 겪었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다수 발탁되면서 '역대 최약체'라는 오명을 들으며 새 출발을 했습니다.

새 대표팀이 꾸려진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다른 국내 대회에서 '승부 담합 파문'이 다시 적발되면서 대표팀 코치가 중도 사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쇼트트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훈련을 소화하고 대회에 나서야 했지만 이번에는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마저 겪었습니다. 선발전 1위를 한 선수는 시즌 전에 발목 부상으로 월드컵 등 주요 대회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했고, 지난해 올림픽에 나섰던 선수는 아시안게임 경기 도중 부상으로 한 시즌에 가장 중요한 대회인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출전을 접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크고 작은 부상에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도 힘겹게 한 시즌을 보내야 했고, 묵묵히 빙판 위를 달렸습니다.

▲ 여자팀을 이끌며 진정한 대들보로 떠오른 '맏언니' 조해리 ⓒ연합뉴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며 기분좋게 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개인 세계선수권에서 '신예' 노진규, '베테랑' 조해리가 남녀 동반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지난 주말에 끝난 팀 선수권에서 남녀대표팀이 모두 정상에 오르면서 쇼트트랙 최강국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뭔가를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더해지면서 선수들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경기를 펼쳤고, 동계아시안게임 1위 수성, 그리고 세계선수권, 팀 선수권 우승이라는 쾌거까지 모두 이뤄내면서 예전의 위용을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한국은 안현수, 진선유 두 에이스의 부재로 '중심점 없는 행보'를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중국, 캐나다 등에 밀리면서 서서히 처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들게 했습니다. 실제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만 2관왕을 차지했을 뿐 여자팀이 '노골드' 수모를 겪자 위기감은 한층 고조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가지 파문 후 맞이한 새 시즌이 새로운 선수들의 경험을 쌓는 시즌으로 운영된다할지라도 워낙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들이 많아 과연 성적은 제대로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대표 선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에이스는 나왔고, 한국 쇼트트랙은 강했습니다. 고등학생 막내인 노진규는 폭발적인 스퍼트와 나이답지 않은 경기 운영 능력으로 아시안게임 2관왕, 세계선수권 3관왕이라는 쾌거를 이뤄내며 첫 성인 세계선수권에서 대박을 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대표 경험이 있는 조해리 역시 지난해 아쉬움을 딛고 보다 여유 있는 경기 운영 능력으로 여자 쇼트트랙 1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진짜 1인자로 올라섰습니다. 또 그밖에 다른 선수들 역시 똘똘 뭉치는 힘을 보여주며 계주 등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전력이 처진다는 오명, 여러 선수의 부상 등 어려움에서도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해주며 이름도 알리고 한국 쇼트트랙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세우는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힘든 여건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이뤄진 세대교체가 소기의 성과를 내면서 희망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평가받을 만합니다. 완전히 새롭게 짜여진 팀이었지만 적절한 시기의 세대교체,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신-구 조화를 통해 1위 자리를 지켜낸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니어부에서 좋은 성적을 내 기대가 컸던 선수들이 성인 무대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으면서 앞으로 활약을 기대하게 한 것은 올 시즌 한국 쇼트트랙이 거둔 쾌거 중의 쾌거로 꼽을 만합니다.

여러 가지 파문 속에서도 실력으로 최강을 입증해낸 한국 쇼트트랙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선발전을 통해 가려질 2011-12 시즌 새 대표팀이 어떤 선수들로 구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처럼 묵묵하게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남기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다시 팬들의 인기를 얻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무관심, 그리고 각종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경기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2010-11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에게 그저 박수를 보내며, 별다른 파문, 잡음 없이 꾸준하게 성장하는 한국 쇼트트랙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