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국 신문 위기의 원인이 ‘디지털기술 적응 실패’가 아닌 ‘언론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신문사 내부의 폐쇄적·남성 중심적·위계적 문화가 조직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해당 논문을 소개하면서 ‘신문사 내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오현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석호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생(석사과정)은 지난달 한국언론정보학회보에 <한국 신문의 뉴스 생산문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오현 교수는 중앙일간지·경제지에서 퇴직한 20·30대 기자 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한국 주요 일간지. 본 사진은 해당 논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이오현 교수는 “신문사의 문제적 조직문화 대부분이 사회적, 기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면서 “이런 조직문화들은 일간지 조직운영과 기사 생산과정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면서 여러 측면에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오현 교수는 “결국 한국 신문 위기의 근본과 핵심은 디지털기술 적응을 못해서라기보다는 저널리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러한 저널리즘의 문제해결은 디지털기술 적응보다는 문제적인 조직문화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오현 교수가 문제로 꼽은 신문사 조직문화는 ▲위계적 집단주의 문화 ▲남성중심주의문화▲정파주의 문화 ▲자본 종속적 문화 ▲비윤리적 문화 ▲전문성 배양 억제 문화 등이다.

신문사 내부에 위계적 구조 있다

이오현 교수는 신문사 조직 전반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조직문화의 특징을 ‘위계성’이라고 꼽았다. 이오현 교수는 “연구 참여자들은 위계적 조직문화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면서 “참여자들 모두 신입기자 시절 연수나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조직의 위계 구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참여자9는 “(현장에서 보고하면) 10년 이상 높은 선배가 인격 모독 같은 식의 발언을 한다”면서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러는 건데’처럼 폭언”이라고 말했다. 참여자7은 “개인의 개성이나 사유를 별로 고려해주는 조직은 아닌 거 같다”면서 “(기자 생활 전과 후에 바뀐 점은) 무리 없이 튀지 않고 그냥 거기 묻어가는 것이다. 그냥 위에 부장이나 경영진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는 거 같기도 하다”고 응답했다.

이오현 교수는 기자들이 조직 내의 위계성에 순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오현 교수는 “기자들은 상사로부터 부당한 언행이나 지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참여자5는 “기자라면 선배의 지시에 반항도 많이 하고 자율성이 강조되는 직업이라고 많이 느껴진다”면서 “정작 수습 때는 자율성이라는 거는 하나도 없다. 굉장히 순종적인 집단이다. 너무 사람들이 말을 잘 듣는다. 나도 말 잘 들었지만”이라고 회상했다.

참여자7은 “(개성이 강하거나 자기주장을 말하는데 거리낌 없던) 사람이 꼭 정을 맞는다. 그런 선배들 다 나갔다”면서 “진짜 정의롭고 좋은 선배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다 나갔다. 선배 중 한 명은 비판적이고 유머러스했는데 바뀌었다. 동기들보다 인사에서 밀리니까 완전 예스맨 됐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위계적 조직문화 때문에 기자들이 광고영업을 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자7은 “오더 기사가 진짜 많다. 광고기사가 그렇게 많은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면서 “나는 광고가 아닌 줄 알고 그 기업이랑 협의가 이뤄진 줄 알고 썼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기사가) 다 광고랑 연관되어 있던 특집”이라고 밝혔다.

참여자6은 “회의 때 부장이 팀장 선배들한테 막 대놓고 이야기를 한다. ‘부수 확장을 해야 하는데 빨리해서 보고해라’. ‘언제까지 빨리 출입처에서 (추가 구독을) 한다고 컨펌을 받아서 보고해라’ 이런다”고 했다.

(사진=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위계적 구조가 정파적 기사, 광고성 기사 만들어

이오현 교수는 위계적·순응적 문화가 신문사 구성원을 정파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자2는 “야마(기사의 주제)가 정해져 있다. 애초 ‘이런 이런 식으로 써라’고 오더가 내려온다”면서 “이미 야마를 듣고 시작하니 좋은 이야기들은 다 흘려듣게 되고, 나쁜 이야기들은 좀 더 꼬치꼬치 묻게 된다. 취재원에게 의도를 갖고 접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참여자3은 “수습이 끝나고 알게 된 것은 상당수의 기사가 야마가 정해져 있고, 정해진 야마대로 주문생산되는 기사가 꽤 있구나(하는 점이었다)”며 “전교조는 무조건 나쁜 놈으로 써야 하는 거. 집회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소음이고 교통에 방해되는 것들로 써야 되는 거…”라고 털어놨다.

참여자들은 데스크가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비판 기사 작성을 지시한 적 있다고 밝혔다. 이오현 교수는 “기자들이 이러한 기사생산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도 하지만 위계적 문화를 배경으로 결국 어떤 형태로든 윗선에 요구한 방향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참여자5는 “차장이 갑자기 재벌계열사를 조지라고 했다. 그래서 계열사 사장이 일을 못 해서 (상품이) 안 팔리는 것처럼 기사를 많이 바꿨다”면서 “(차장이 비판 기사를 지시한 이유는) 차장급이 되면 광고영업을 해야 하는데, 무시당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오현 교수는 “신문사 구성원들은 조직 외부의 사회와 소통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자기 자신, 언론계 내에서의 정보와 평가에만 의존하여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면서 “또 신문사 구성원은 자신들이 하는 일과 생산한 기사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이 대단한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신문사라는 조직 또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선민 의식적인 우월적 사고를 문제의식 없이 강하기 지니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자5는 “선배 기자는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정보의 중심에 있다’ ‘내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정작 그 사람이 대단한 기사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약간 좀 착각에 빠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참여자6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바깥세상 사람들을 만나니,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너무 다르다”면서 “(세상은) 너무 급변하는데 그 안에 있으면서 못 봤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참여자3은 “누가 죽었을 때 유족취재를 조직 안에서 너무나 당연한 거로 받아들인다”면서 “(데스크가) 어떤 사건 (성폭행 및 살인사건) 때 유족취재를 시켰다. 아니 어린애가 죽었는데 부모한테 가서 뭘 물어보고 뭘 하냐”고 토로했다.

이오현 교수는 “(참여자들이 재직했던) 신문사들은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한 위계적 문화가 작동했다”면서 “위계적 문화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구성원은 이에 순응하고 나아가 내재화하여 승계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기자들을 저널리스트가 아닌 샐러리맨으로 존재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오현 교수는 “(신문사 내부문화는) 정파적 입장에 맞춘 기사, 광고 수주를 목적으로 한 흠집 내기 기사 또는 홍보성 기사, 상사에 의한 민원성 기사 등이 큰 논란 없이 생산되는 환경을 제공했다”면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질이라는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오현 교수는 “해당 신문사는 조직 외부의 사회와 소통하기보다는 주로 자기 자신, 소속 신문사 조직 내 또는 언론계 내에서의 정보와 평가에 의존하여 생각하고 판단한다”면서 “이로 인해 사회변화와 동떨어진 우월적 선민의식, 특권의식, 면죄부 의식 등을 성찰 없이 견지하고 동원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의식은) 과장 및 선정적 기사, 왜곡 기사, 진부하고 설득력 없는 기사, 독자가 아닌 생산자 중심 기사, 정확성·전문성·심층성이 부족한 기사 등이 생산되는 환경을 제공하여 저널리즘의 원칙과 질을 훼손하였다”고 비판했다.

19일 중앙일보 <문제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다> 칼럼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제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9일 해당 논문을 소개하는 <문제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다> 칼럼을 게재했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논문은 묻는다. 그간 위기를 타개하려는 한국 신문의 시도들이 물거품에 그친 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문제적 조직문화 때문 아니냐고”라면서 “논문 읽기가 이토록 힘이 들 줄 몰랐다. 연구자들과 마주 앉아 젊은 날의 좌절을 곱씹는 전직 기자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고 썼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민주적이지 못한 언론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할 수 있는가.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는 기자들이 어떻게 남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라면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도 한국 사회가 같은 곳을 맴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우리 내부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저항도 거셀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모든 게 거짓이고 가짜다. 밖으로만 향하던 개혁의 눈, 비판의 눈을 우리 안으로 돌릴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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