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내년 확대 시행을 앞둔 가운데 정부와 국회의 정책 후퇴 조짐이 구체화되면서 양대노총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언론은 정부가 시장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 강행론을 펴왔다며 비판에 나섰다.

13일 SBS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과 관련한 보완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노동부가 내놓은 방안은 특별연장근로제 확대 시행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자연재해나 재난에 준하는 사고의 경우에만 노동부 장관 인가를 통해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관련 조건을 연구개발, 업무량 급증 시에도 연장할 수 있도록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대상을 늘리는 방안이다.

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게 보고한 문서에는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조건 완화가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국회 입법이 늦어질 경우 정부가 자체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달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에 대한 보완책을 주문했고,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국회 입법이 먼저"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여기에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13일 "주 52시간제, 저도 투표했다. 그래서 스스로 많이 반성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예외규정을 많이 뒀어야 하는구나'하는 반성"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 회의에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유연근로제 입법 심의 일정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자유한국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더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완화 등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주52시간제 보완 방안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는데, 한국당의 추가대책 요구가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한정애 민주당 환노위 간사는 한국당의 주장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연근로제를 다 제도화하자고 하는 것"이라면서도 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계 숙원 법안들과 동시 처리를 한다면 특별연장근로 확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이자 한국당 환노위 간사는 "민주당은 선택근로제든, 특별연장근로든 둘 중 하나만 받아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정치권의 주 52시간제 후퇴 조짐에 민주노총은 물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에 합의했던 한국노총까지 즉각 반발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국회의 노동절망 사회 선언이자, 노동자를 향한 대결 선언"이라며 국회 앞 농성 등 "즉각적 투쟁"을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활용되는 특별연장근로의 인가제도가 확대된다면 '특별'한 사유가 아니어도 노동자들은 '특별'한 노동을 해야 한다"며 "노사정이 어렵게 합의한 탄력근로제도를 시행해보지 않고, 추가적인 보완책을 시행한다면 정부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5일 경향신문은 사설 <정부와 정치권의 주52시간 '허물기' 어디까지 갈 건가>에서 주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임을 강조하며 "정부의 지나친 재계 옹호는 곧 노동정책의 후퇴임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주52시간제와 탄력근로제는 이제 시작이다. 확대시행에 앞서 보완입법을 논의하는 일은 시기상조"라며 "정부가 앞장서 보완입법을 촉구할 일은 더욱 아니다. 주52시간제가 정착해도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11월 15일 사설 <정부와 정치권의 주52시간 '허물기' 어디까지 갈 건가>

반면 주요 보수언론은 그동안의 정부 정책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주52시간제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기업 아우성에 귀 막더니 이제 와 "주52시간 반성">에서 박영선 장관의 발언을 언급하며 "중소기업들 아우성에 귀 막은 산업 현장에 온갖 혼선을 일으켜 놓고는 이제 와서 잘못됐다고 한다"고 썼다.

이어 조선일보는 "중소기업 대부분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다. 법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이어서 사실상 '실천 불가능'"이라며 "기업만 죽어날 지경이다", "주 52시간 문제부터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2205개나 되는 CEO 형사처벌 조항,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에서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까지 처벌하는 법령들이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내년에 300인 미만 기업까지 확대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라며 "CEO도 모르게 직원이 주52시간을 위반하기라도 하면 CEO가 감옥에 갈 판"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에 이어 내년에는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52시간제가 적용된다. 중소기업에 비상이 걸렸다"고 질문했다. 이에 사 명예이사장은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급히 올리면 실업자가 늘어나게 돼 있다"며 "52시간제의 일률적 강요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경제 전체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겨레는 사설 <국회, '탄력근로제-ILO협약' 함께 논의해보라>에서 정부·여당측 주장에 가까운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민주노총이 '노동개혁 후퇴'라며 반대한다. 반대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은 경영계와 자유한국당이 '시기상조'라고 난색"이라며 "지금 상태라면 둘 다 20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무산될 처지다. 박영선 장관도 '나도 투표를 했는데, 반성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고 썼다.

이어 한겨레는 "국회가 이제라도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노사협력의 전기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주52시간 근로제 보완과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동의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노사와 적극 논의하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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