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정치권의 한철 장사가 다시 돌아왔다. 총선 전략과 맞물린 인재영입, 인적쇄신, 물갈이 공천 이야기다. 특히 이번에는 이게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정계개편의 그림마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단 분위기는 여당 쪽이 더 좋은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박찬주 씨 영입 논란 등으로 초장부터 분위기를 망쳤다. 최근 보수정치 재편의 지휘자를 자처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 측에서 대권주자 험지 출마론 등을 펴고 있지만 홍준표 전 대표가 “니가 가라 하와이”를 외치는 것에서 보듯 별 소용은 없는 것 같다. 유승민 의원 쪽에서 개혁 인재 영입을 공표하라고 했다고도 하고, 완전국민경선 얘기도 나온다지만 통합 문제가 맞물려 상당 기간은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어찌됐건 챙겨줄 자리가 많은 여당인데다 ‘빅 마우스’들이 불출마로 먼저 치고 나온 탓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청와대 출신 출마희망자들을 견제하는 역할도 자임하고 있어서 과거 정권의 ‘진박감별사’ 같은 논란은 확실히 덜할 것 같다.

하여간 최근 정국 때문에 양당 모두 젊은 세대의 영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게 호사가들이 예측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당사자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동아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 각 당이 청년에게 비례대표 50%를 할당할 것을 제안했다. ‘82년생 김지영’이나 고 김용균 씨와 같은 이들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언급도 나왔다.

이런 주장은 비례대표 후보 배분을 ‘콘셉트’를 갖고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는 정권 심판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여당이 명확한 콘셉트를 잡고 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이를 돌파해야 한다. 이철희 의원의 주장은 노력하는 평범한 젊은이들을 대변한다는 노선으로 중심을 잡으라는 것이다. 고려해볼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물론 이런 주장과는 다른 결의 지적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한겨레에 쓴 칼럼의 경우가 그렇다. 김윤철 교수는 이 글에서 자유한국당의 박찬주 씨 영입과 정의당의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영입을 예로 들면서, 피해 당사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내세우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훈련된 이념 정책적 활동가들을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맥락의 주장은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의 서복경 교수도 내놓고 있다. 정당 밖에서 인물을 데려오는 것은 일종의 위기대응 매뉴얼이었을 뿐이므로 이제는 당내에서 성장한 인물이 당내의 절차에 따라 공직 후보로 선출되는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지난 7일 한겨레 지면(인터넷판에선 6일)에 실린 칼럼 주장의 핵심이다.

이 세 가지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당정치라는 기준으로 볼 때는 김윤철 서복경 교수 등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사회적 갈등은 궁극적으로 정당의 정치활동을 통해 해소돼야 하는데,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정당과 시민사회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여기서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정당정치의 원리와 취지를 기술적인 것에 한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정치에는 고유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가 직면한 문제가 정치인들의 숙련 부족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성 정치의 문제를 논하는 대부분의 주장은 정당이 마땅히 대변해야 할 것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것이 보여주는 게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물론 이철희 의원의 주장처럼 파격적인 인재영입이 앞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유사한 방식으로 영입된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한 차례 ‘배지’를 달아 본 경험을 갖는 걸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이철희 의원 주장처럼 20명 이상의 젊은이들을 영입한다고 해도 이들이 젊은 세대를 대변할 수 있도록 당의 노선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또다른 문제라는 점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파격적인 물갈이 공천’이 정치세력의 근본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일종의 ‘분칠’로 끝나고 말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실 현실 정치의 문제는 얼마나 큰 변화의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끌어 볼 것인가라기보다는, 어떤 노선을 어떤 수단으로 유권자들에게 평가받을 것이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공천을 어떻게 하든 그것은 정치세력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정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삶의 기술이 아닐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요 정당으로부터 실제 ‘영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란 지금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인재영입이 파국으로 귀결된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인식을 가진 군 엘리트 출신이거나 현역 의원과 연줄이 있는 청년단체의 활동가라는 조건은 기성정치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 상기하게 한다.

기성정치가 절대 영입할 일이 없는 사람이 당적을 갖고 밑바닥에서부터 활동하면서 공직후보로 올라서는 날은 우리 삶이 정치 그 자체가 될 때 올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는 이 조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엘리트로서의 자격이나 연줄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치세력의 문호를 개방하는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원내에 그런 세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권의 인재영입이니 물갈이니 하는 말들이 허망하게 느껴진다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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